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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덕의 작물이야기 3 - 가지과 이야기, 치명적인 독성과 매혹적인 맛

아메바! 2026. 3. 10. 10:31

안병덕의 작물이야기 ③ : 가지과 이야기

“치명적인 독성과 매혹적인 맛, 우리 밭의 진정한 주인공을 만나다”

 

밭에서 가장 많이 재배하는 가지과 작물의 위상

가지과는 우리나라 밭에서 가장 많이 재배하는 작물입니다. 가지과에는 가지, 고추류, 감자, 토마토 등이 포함되는데, 2024년 기준 밭 재배 면적을 살펴보면 콩과 들깨 다음으로 가지과인 고추가 3위를 차지했답니다. 또한 배추 다음으로 감자가 재배 면적 5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죠.

 

시설 재배에서도 토마토의 비중은 꽤 높은 편인데, 실제 세계에서 가장 많이 먹는 채소가 바로 토마토랍니다. 가지과는 열매 중심 작물로서 성장이 빠르고 환경 적응력이 뛰어나 생산성이 매우 높습니다. 맛과 용도 또한 다양하여 밭농사의 주요 작물이 된 것이죠. 예전에는 많이 재배했으나 지금은 수입산 때문에 재배 면적이 1/10 수준으로 줄어든 담배 역시 가지과에 속하니, 밭농사에서 가지과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작물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역사를 바꾼 외래 작물의 상륙과 전파

감자와 고추, 토마토 등은 오늘날 텃밭 농부들에게 매우 친숙한 작물들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우리나라 밭에 심어진 것이 불과 사오백 년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울 정도이죠.

 

실제로 감자는 남미의 안데스산맥이 원산지로, 콜럼버스 이후 유럽으로 건너가 우여곡절 끝에 유럽을 살린 소중한 식량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조선 후기에 도입된 것으로 보고 있죠. 감자는 세계 역사를 바꾸었다고 평가받는데, 그중에서도 1840년대 아일랜드 대기근 사태는 무척 유명합니다. 당시 아일랜드 인구는 800만 명이 넘었는데, 주식이 된 감자가 역병으로 인해 수확이 크게 줄어들자 100만 명 이상이 굶어 죽고 100만 명 이상이 미국으로 이주하게 되었답니다. 이때 건너간 아일랜드인들은 미국의 산업화는 물론이고 케네디, 레이건, 오바마, 바이든 등 여러 대통령을 배출하며 미국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답니다. 감자는 추운 지방에서도 잘 자라 북유럽에서도 많이 재배하였고 감자가 겨울철 돼지 사료로 쓰이며 햄, 소시지 등 가공육 소비증가에도 기여했다 하네요.

 

고추 역시 후추를 구하러 간 콜럼버스에 의해 유럽으로 전해졌고, 후추 대신 전해지며 ‘핫 페퍼(Hot Pepper)’라 불렸습니다. 그 후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까지 들어왔는데, 고추의 매운맛이 유럽에서는 큰 환영을 받지 못했지만 우리에게는 이제 없어서는 안 될 식재료가 되었죠. 더구나 우리는 풋고추를 접시 위에 올려놓고 채소처럼 먹을 정도인데 요즘은 롱그린이나 오이맛 고추 등 맵지 않은 고추도 인기랍니다.

 

토마토는 날로도 익혀도 먹지만 케첩, 페이스트, 쥬스 등으로 가공이 가능해 세계 1위의 채소가 되었지요.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요리에 마늘이나 된장, 고추장에 밀리고 산미채소로도 김치, 깍두기에 밀려 세계적 위상의 대접을 받진 못하고 있고요.

 

가지과 작물이 품은 방어 기제, 독성 물질

가지과는 초식동물이나 벌레와의 싸움에서 살아남기 위해 ‘알칼로이드’ 계통의 꽤 유독한 독성 물질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가지과의 독성은 국화과의 쓴맛 계열이나 미나리과의 향 독성보다도 훨씬 강한 편이죠.

 

감자는 솔라닌을, 고추는 캡사이신을, 담배는 니코틴을 만들어 내는데 이는 모두 우리 귀에 익은 독성 물질들입니다. 감자의 경우 솔라닌은 덩이줄기인 감자보다 잎과 열매, 줄기에 더 많이 들어 있습니다. 유럽 사람들이 초기에 감자를 ‘악마의 자식’으로 불렀던 이유도 씨로 번식하지 않고 땅속에서 나오는 데다, 잎과 줄기를 감자와 함께 요리해 먹고 탈이 났기 때문이라지요.

감자의 솔라닌은 껍질 부분에 많으며, 싹이 나거나 병이 들거나 햇빛에 노출되어 파랗게 변하면 그 함량이 증가합니다. 감자가 파랗게 변하는 것은 그 부분에 광합성을 하는 엽록소가 만들어지기 때문인데, 줄기인 감자를 보호하기 위해 솔라닌을 늘리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싹이 난 부분 역시 싹을 보호하기 위해 솔라닌이 증가하는 것이겠죠.

 

토마토의 경우도 잎과 줄기, 그리고 파란 열매에 솔라닌류(토마틴)의 독성이 있답니다. 다만 빨갛게 익으면서 토마틴 성분은 없어지고 건강에 유익한 항산화 성분인 라이코펜이 만들어지는데, 익기 전의 파란 토마토를 새나 벌레가 건드리지 않는 이유 역시 독성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 가지과 작물의 주요 독성 물질 비교

작물명 독성 물질 특징 및 영향
감자 솔라닌 싹과 파란 껍질에 많으며, 과다 섭취 시 구토와 복통 유발
고추 캡사이신 매운맛을 내는 성분으로, 과다 섭취 시 위점막 자극
담배 니코틴 강력한 신경독성 물질로 곤충에 대한 살충 효과
토마토 토마틴 덜 익은 파란 열매에 존재하며 익으면서 라이코펜으로 대체

 

가지과의 독성은 미량 섭취 시 강심 작용이나 소염 작용 등 약이 될 수도 있지만, 위장 장애나 면역 질환을 앓고 있는 분들은 예민하게 반응하여 증상이 악화될 수 있습니다. 솔라닌은 독성이 꽤 강해 400mg 이상의 많은 양을 섭취하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고 하죠. 하지만 성인에게 구토나 설사 등 중독 증상이 나타나는 함량(200~300mg)은 큰 감자 30~40개 이상(감자 100g당 7mg 이하 함유 시)을 먹었을 때의 양이므로, 싹 난 부분을 도려내고 껍질을 벗겨 먹는 정도로는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답니다.

 

익지 않은 파란 토마토도 장아찌로 만들어 숙성하면 독성이 분해되어 먹을 수 있고, 가지 역시 잎과 줄기에 비해 열매에는 솔라닌 함량이 많지 않아 식용에 큰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건강한 사람에게는 괜찮더라도 감자를 먹을 때는 껍질을 벗기는 것이 좋고, 토마토는 잘 익은 것을 선택하며 위가 좋지 않다면 매운 고추는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요.

 

독성을 뚫고 찾아오는 벌레 피해

이러한 강력한 독성 덕분에 가지과 재배 시에는 초식동물이나 일반적인 벌레 피해가 적은 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독성 가득한 가지과 작물을 먹는 벌레가 있으니, 역시 자연에는 절대적인 것이 없나 봅니다.

 

담배의 니코틴은 살균 및 살충 효과가 있어 친환경 방제제로 이용되기도 하지만, 담배나방 애벌레는 담뱃잎을 갉아 먹으며 자라납니다. 이들은 또한 고추나 토마토의 열매 속으로 파고 들어가 피해를 주기도 하죠. 또한 ‘28점박이무당벌레’는 감자 잎에 달라붙어 이를 갉아 먹는데, 실제 피해는 이 벌레가 잎 뒷면에 알을 낳은 후 부화한 수십 마리의 애벌레가 잎을 먹어 치우면서 발생합니다. 이들은 6월 중순쯤 감자 잎이 사라지면 토마토와 가지로 옮겨가는데, 특히 가지의 잎과 열매에 큰 피해를 준답니다. 사람이 먹어도 해로운 성분을 그 조그만 벌레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먹는다는 것이 참으로 대단하게 느껴지죠.

 

가지과 농사의 최대 난관, 연작 피해

한 작물을 같은 곳에 계속 심으면 토양 내 병해충이 축적되어 발병률이 높아지게 됩니다. 벼과나 콩과 등 일부 작물은 연작 피해가 거의 없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어짓기는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가지과 작물은 이어짓기를 할 경우 연작 피해가 매우 심하게 나타나는 작물이랍니다.

 

가지과의 알칼로이드계 독성은 동물의 공격에는 효과적이었지만, 병원균에 대한 살균력은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가지과는 조직이 연하고 수분이 많은 구조인 데다 잎 또한 감염되기 쉬운 형태를 띠고 있어 역병균 등에 취약합니다. 역병균은 고온 다습하고 물이 고인 환경에 최적화된 병원체이기에, 여름을 지내야 하는 가지과 작물에게 연작은 더욱 치명적일 수밖에 없죠.

 

실제로 고추는 어느 밭에서든 해마다 많이 심기 때문에 탄저병 발생이 일상화되어 있으며, 이어짓기를 계속하면 역병 발생률도 높아져 큰 피해를 입는 사례를 자주 보게 됩니다. 또한 연작은 ‘풋마름병(청고병)’의 발생을 높이기도 하는데, 이 병은 토마토에도 나타나 큰 피해를 줍니다. 땅속에서 토양 수분과 직접 접촉하는 감자는 발병 위험이 더욱 크죠. 더구나 감자는 영양 번식으로 감자 조각을 심기 때문에, 보관 중인 감자에 세균이 묻어 있을 가능성이 높아 병 발생률을 더욱 높이게 됩니다. 감자 재배 시 돌려짓기를 하면서도 매년 병균이 없는 씨감자를 새로 구입해 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처럼 가지과는 연작 피해가 심하므로 가지과를 심은 후에는 배추과, 콩과, 수선화과 등으로 돌려짓기를 해야 합니다. 가지과 내에서는 병해충이 서로 같으므로 가지과끼리의 돌려짓기는 당연히 피해야 하죠. 또한 재배 시 배수로를 잘 정비하여 물 빠짐을 좋게 하면 병 발생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된답니다.

 

결과적으로 가지과는 유독한 독성 물질을 만들어 내어 자연 경쟁에서 우위를 점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람에게 유용하여 많이 심어짐으로써 널리 퍼지게 되었고, 그만큼 많이 재배되다 보니 병충해도 많아진 셈이라 볼 수 있습니다. 연작 피해가 거의 없는 벼과와 대비되는 부분인데, 아마도 가지과는 자신이 이토록 세계에 널리 퍼지고 매년 집중적으로 심어지게 될 줄은 몰랐던 모양입니다.

 

[다음 편 예고]

우리 밭의 든든한 주역인 가지과 이야기를 마칩니다. 이어지는 4회에서는 쓴맛의 지혜로 자신을 지키며 우리 식탁에 풍성한 쌈채소를 제공하는 '국화과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