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병덕의 작물이야기 ① : 작물의 분류
"상추는 왜 벌레가 안 꼬일까?" 작물의 ‘과’를 알면 농사가 쉬워집니다
농사를 지으면서도 처음에는 식물의 식물학적 분류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었답니다. 상추를 심으면서 '상추가 국화과라는 걸 굳이 알 필요가 있을까' 싶었고, 외떡잎식물과 쌍떡잎식물은 그저 떡잎이 하나냐 둘이냐의 차이인가 보다 했지요.
그러다 쌈채소를 키우며 의문이 생겼습니다. 상추나 쑥갓, 치커리는 벌레 피해가 거의 없는데, 왜 겨자채나 청경채는 유독 벌레 피해가 큰지 궁금해졌거든요. 그 답을 찾는 과정에서 국화과의 특성을 알게 되었고, 작물들의 과별 분류에 따른 여러 특징에 깊은 흥미를 느끼게 되었답니다.
특히 '과'별로 나타나는 독성이나 향 성분이 우리가 먹는 먹거리와도 밀접하게 관련되고, 번식이나 생장, 토양 반응 등의 생존 전략이 작물 재배법과도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더 넓게 파고들게 되었지요.
작물 분류에서 같은 ‘과’에 속하는 식물은 조직 구조나 화학 방어 물질, 생리 반응이 비슷하답니다. 그래서 작물 ‘과’의 특성을 잘 이해하면 연작 장해, 병해충 대응, 거름 주기 등 재배 관리에 훨씬 유용하게 대응할 수 있고 농사의 재미도 배가되지요.
식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속씨식물의 ‘과’ 종류는 400여 개나 되지만, 다행히 우리가 농사짓는 작물의 ‘과’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벼과, 국화과, 가지과, 배추과(십자화과), 콩과, 수선화과, 박과, 미나리과, 비름과, 꿀풀과 등이 농사 작물의 대부분을 차지하죠. 이제 이들 ‘과’의 특성과 작물 재배, 그리고 먹거리와 관련해 제가 알게 된 이야기들을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그전에 먼저 식물의 분류 체계를 살펴보고, 쌍떡잎식물과 외떡잎식물의 차이와 그 속에 담긴 의미를 들여다볼까요?
계·문·강·목·과·속·종, 복잡한 족보 속에 숨은 농사의 힌트
식물의 분류 체계를 살펴보면 계, 문, 강, 목, 과, 속, 종의 7단계로 나뉩니다. 이는 꽃의 유무나 씨앗의 형태, 떡잎의 수, 꽃의 형태 등에 따라 단계적으로 분류된 것이죠. 우선 물과 양분의 이동 조직인 관다발의 유무에 따라 ‘문’이 나뉩니다. 이끼류처럼 관다발이 없는 선태식물문이 있고, 관다발 식물 중에는 씨앗 없이 포자로 번식하는 양치식물, 그리고 씨로 번식하는 겉씨식물(소나무 등)과 꽃과 열매를 맺는 속씨식물(꽃식물)로 나뉩니다.
속씨식물은 다시 떡잎의 수에 따라 외떡잎식물과 쌍떡잎식물로 분류됩니다. 예를 들어 고추는 [식물계-속씨식물문-쌍떡잎식물강-통화식물목-가지과-고추속]에 속하는 종입니다. 마늘은 [식물계-속씨식물문-외떡잎식물강-아스파라거스목-수선화과-부추속]에 속해 있지요.
재미있는 점은 마늘이나 양파 등을 과거에는 백합과로 분류했으나, 현대 분자계통 분류에서는 DNA 분석을 기반으로 수선화과로 재편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전통 분류는 겉모양을 중심으로 하여 이해하기 쉬운 장점이 있고, 유전자 분석 중심의 현대 분류는 진화 관계를 규명하며 신품종 육성이나 약용 성분 연구에 유용하답니다.
종이 다르면 자연 상태에서는 교배가 되지 않지만, ‘과’ 아래의 ‘속’이 같으면 인공 교배가 가능할 수도 있다니 육종학 측면에서는 과학적 분류가 매우 중요하겠죠? 하지만 실제 작물 재배 현장에서는 여전히 쌍떡잎식물강처럼 전통적인 분류 방식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답니다.
쌍떡잎식물과 외떡잎식물, 무엇이 다를까요?
외떡잎식물과 쌍떡잎식물은 말 그대로 떡잎이 하나인가 둘인가의 차이지만, 그 생장 방식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습니다.
쌍떡잎식물의 줄기는 생장점이 줄기 끝에 있어 끝없이 위로 자라는 길이생장을 합니다. 고추를 심고 지주대에 묶어주었을 때, 고추가 더 자란다고 해서 묶어준 부분의 위치가 위로 올라갈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고추는 줄기 끝에서만 세포 분열이 일어나 자라기 때문에 이미 자라 있던 줄기의 위치는 고정되어 있답니다.
대신 쌍떡잎식물은 형성층에 의해 줄기가 굵어지는 부피생장을 합니다. 나무에 나이테가 생기며 굵어지는 것을 생각하면 쉽지요. 그래서 고추 지주를 묶을 때 너무 꽉 묶으면 줄기가 굵어지면서 파고들 수 있으니 여유 있게 묶어주라고 하는 것이랍니다. 또한, 잎이 돋아나는 마디에서도 생장점이 있어 곁순이 나오는 분지생장을 합니다.
반면 외떡잎식물은 생장점이 땅 아래 줄기와 뿌리 사이에 있습니다. 그래서 곁눈이 분화되며 새로운 줄기를 계속 만들어내는 분얼생장을 하지요. 벼 포기가 여럿 생기고 파나 부추 줄기가 여러 개로 늘어나는 모습이 바로 이것입니다. 뿌리 역시 줄기가 늘어남에 따라 새로운 줄기 아래에 부정근(수염뿌리)이 생겨나는 형태를 띱니다. 볍씨 한 알에서 여러 줄기와 뿌리가 나오기에 모내기할 때 "모를 찢어 심는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죠.
또한 외떡잎식물의 잎은 기부생장을 합니다. 잎의 아랫부분이 세포 분열을 하여 위로 밀어 올리는 방식이죠. 대파의 끝이 누렇게 말라도 밑에서 계속 밀고 올라오며 커지는 이유, 부추를 베어 먹어도 다시 자라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답니다.
[잠깐 상식] 부추의 수명은 얼마나 될까요?
부추를 한 번 심으면 몇 년이나 먹을 수 있을까요? 사실 부추의 생물학적 수명은 '모른다'가 정답일 정도로 길답니다. 다만, 한자리에서 계속 키우면 포기가 너무 과밀해지고 양분 경쟁과 병해로 품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보통 3~5년마다 밭을 갈고 포기나누기를 해주는 것이지요.
초식동물의 공격에 맞선 외떡잎식물의 생존 전략
지구상에 어느 식물이 먼저 나타났을까요? 연구에 따르면 외떡잎식물이 나중에 출현했다고 하는데, 이는 초식동물에 대응해 진화한 결과로 본답니다.
쌍떡잎식물은 줄기 끝에 생장점이 있어 초식동물이 줄기 끝을 잘라 먹으면 성장이 멈추고, 떡잎 아랫부분이 잘리면 생명이 끝나버립니다. 이에 대응해 외떡잎식물은 생장점을 땅속으로 숨기고 분얼을 함으로써, 위쪽이 뜯겨 먹혀도 다시 자랄 수 있도록 진화한 것이죠. 이는 산불이 나거나 강풍에 줄기가 꺾여도 살아남을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예초기로 논둑 풀을 정리할 때, 쌍떡잎식물은 금세 사라지지만 바랭이 같은 외떡잎식물 풀들이 다시 자라나 논둑을 뒤덮는 것도 이러한 생장 특성 때문이랍니다. 어쩌면 외떡잎식물들은 농부와의 '풀싸움'까지 미리 예견하고 진화한 걸지도 모르겠네요.
📋 쌍떡잎식물 vs 외떡잎식물 한눈에 비교하기
| 구분 | 쌍떡잎식물 (Dicot) | 외떡잎식물 (Monocot) |
| 떡잎 수 | 2개 | 1개 |
| 생장점 위치 | 줄기 끝, 마디(겨드랑이) | 줄기 하단(지표면 근처), 잎 기부 |
| 생장 방식 | 길이생장, 부피생장, 분지생장 | 분얼생장, 기부생장 |
| 뿌리 형태 | 원뿌리와 곁뿌리 | 수염뿌리 (부정근) |
| 관다발 배열 | 규칙적인 고리 모양 | 흩어져 있는 모양 |
| 주요 작물 | 고추, 상추, 콩, 사과, 수박 등 | 벼, 보리, 옥수수, 파, 부추, 마늘 등 |
[다음 편 예고]
이 연재는 11회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다음 2회에서는 우리 밥상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면서도 강력한 생존 능력을 자랑하는 '벼과 작물의 세계'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 나누어 보겠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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