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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도시농업의 다양성 - 임대 텃밭, 합법적 게릴라 가드닝, 도시 채집농, 먹거리숲

아메바! 2025. 4. 11. 12:44

베를린 도시농업의 다양성

이창우 / 한국도시농업연구소장

 

베를린에는 세상의 모든 도시농업 형태가 다 있다. 게다가 양과 질에서 모두 풍부하다. 베를린은 독일의 수도로 면적 892㎢에 인구 390만 명이다. 유럽연합 내 최대도시인 베를린의 도시농업을 대표하는 것은, 독일 특유의 클라인가르텐이다. 베를린에는 약 2,900헥타르에 70,953개의 구획이 있는 877개의 클라인가르텐 단지가 있다. 비슷한 규모의 대도시 중 다양하게 활용되는 대규모 텃밭이 시 전역에 흩어져 퍼져 있는 도시는 베를린이 유일하다. 더구나 베를린 클라인가르텐의 80% 이상은 영구적으로 보호받고 있다.

 

베를린에는 200곳이 넘는 공동체텃밭이 있다. 프린체신가르텐이나 템펠호프 공원의 공동체텃밭은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져 있다. 공동체텃밭에는 양봉을 함께 하는 곳도 많다. 베를린 양봉협회에 따르면 현재 베를린에만 11,000군 이상의 벌통이 있다. 베를린의 300개 학교에 학교텃밭이 있다. 옥상텃밭도 물론 곳곳에 있다. 10여 곳의 어린이농장을 포함해 동물과 작물을 함께 키우는 도시농장도 도시 여기저기에 있다. 베를린 시 외곽에는 임대텃밭이 다수 있다. 임대텃밭은 우리나라의 주말농장과 비슷하지만 옵션이 다양하다. 가로수 아랫부분에 시민이 꽃이나 허브를 마음대로 심을 수 있는 자치구가 3곳이나 된다. 도로 바로 옆이라 먹거리 재배가 허용되지 않지만 어쨌든 게릴라 가드닝이 합법이다. 야생 먹거리의 채집을 허용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자치구도 생겼다. 템펠호퍼 펠트와 카페 보타니코에는 먹거리숲도 있다.

 

여기서는 도시 외곽의 임대텃밭, 합법적 게릴라 가드닝, 도시 채집농, 먹거리숲이라는 4가지 주제로 나누어 베를린 도시농업의 다양성을 살펴본다.

 

도시 외곽의 임대텃밭

베를린의 임대텃밭은 임차인이 채소를 가꾸고 수확하기만 하면 된다는 장점이 있다. 파종이나 모종 심기는 전문가가 알아서 해준다. 클라인가르텐, 공동체텃밭 또는 자신의 집 발코니가 아닌 곳에서 농부가 되고 싶은 사람이 대상이다. 텃밭 가꾸기는 5월부터 10월까지 이어진다. 베를린의 임대텃밭은 대부분 시 외곽이나 시 경계 바로 너머에 있다. 도시농부는 다양한 크기와 여러 모델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임대텃밭의 크기는 소형(20㎡), 중형(45㎡), 대형(90㎡)이 있다. 연간 임대료는 대체로 소형 26만원, 중형 42만원, 대형 77만원이다. 우리나라 수도권 주말농장보다 3∼4배 비싸다. 가장 저렴한 옵션은 임차인이 직접 심고, 관리하고, 물을 주는 빈 상자텃밭이다. 자동 관수 시스템이거나 전문가가 다양한 채소와 허브를 미리 심어주면 추가 비용이 든다. 작물이 미리 심어져 있는 경우라도 도시농부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창의적으로 펼칠 수 있게 일정 공간이 남겨져 있는 텃밭이 많다. 농장주는 작물 외에 기본적인 농기구, 물, 전문가 조언 및 재배 계획을 제공한다. 대중교통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텃밭도 있지만, 자전거나 자가용을 이용해야 하는 텃밭도 있다.

 

합법적 게릴라 가드닝

12개 자치구가 있는 베를린에서는 게릴라 가드닝이 합법이다. 현재로서는 가로수 아래 식재구덩이 부분에서만 허용된다. 도로 바로 옆이라 먹거리 재배는 허용되지 않는다. 그래도 게릴라 가드닝이 합법인 것에 큰 의미가 있다. 광의의 도시농업에 꽃가꾸기를 포함한다면 이러한 게릴라 가드닝을 도시농업의 한 형태로 다뤄도 될 것 같다. 템펠호프-쇠네베르크 등 9개 자치구는 사전 협의해야 가능하고, 미테 등 3개 자치구는 허가 없이도 가능하다.

 

템펠호프-쇠네베르크 자치구에서는 개인적으로 가로수 아랫부분을 아름답게 꾸미고자 하는 사람은 녹지과 담당자에게 연락해 어떤 식물을 심을지 사전 협의해야 한다. 담당자는 해당 장소가 식물 심기에 적합한지, 원하는 식물을 심는 것이 가능한지 여부를 확인해준다.

 

미테, 프리드리히스하인-크로이츠베르크, 노이쾰른 자치구에서는 정해진 규칙만 따른다면 허가 없이 가로수 아랫부분에서 게릴라 가드닝이 가능하다. 자치구 녹지과는 웹사이트를 통해 시민들이 직접 도시경관을 아름답게 가꾸도록 권장하고, 식재 요령을 알려준다.

정해진 규칙은 다음과 같다. 갓 심은 어린 나무는 뿌리가 아직 가늘고 민감하기 때문에 나무 아래에 다른 식물을 심어서는 안 된다. 덩굴 식물, 높이 자라는 식물, 가시가 많은 식물, 덤불을 심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식물은 50cm 이상 자라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이 시야를 확보하고 안전하게 거리를 다닐 수 있다. 강우 시 자연적인 수분 흡수를 방해하지 않도록 식재지의 지면 높이가 주변 포장 보도보다 높지 않아야 한다. 게릴라 가드너는 가로수에 질병이나 손상을 발견하면 담당 부서에 알려주면 된다. 가로수 가지치기는 녹지 담당 부서만 할 수 있다.

 

가로수 아랫부분에 일년생 및 이년생 꽃, 뿌리가 얕은 다년생식물, 지피식물과 야생화 등은 마음대로 심을 수 있다. 여기에는 금잔화, 튤립, 수선화, 삼지구엽초, 데이지, 캐모마일, 야생 아욱, 델피니움, 타임, 야생 마늘, 라벤더 등이 포함된다.

 

도시 채집농

베를린의 샤를로텐부르크-빌머스도르프 자치구는 2015년부터 야생 먹거리의 자연 채집을 허용하고 있다. 도시의 많은 야생허브는 식용 가능하나, 개 소변, 거리 먼지 및 오염 가능성이 있는 토양 때문에 항상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사람이 자주 다니지 않는 곳을 찾아 개인 소유가 아닌 먹거리만 채집해야 한다. 베리 덤불, 야생 과일이 녹지 공간, 특히 어린이 놀이터 주변에 점점 더 많이 심어지고 있다.

 

이 자치구에서 어떤 견과류와 과일나무가 자라는지 알고 싶다면 문트라우프(mundraub: 서리라는 뜻)라는 단체가 만든 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지도를 보고 수확철에 과일을 직접 수확하고 즐길 수 있다. 이 자치구는 새에게 먹이를 주는 유실수와 꽃가루매개자 친화식물을 통해 생태적으로 가치 있는 비오톱(생태서식공간)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먹거리숲

베를린 중심부에 있는 시민공원인 템펠호퍼 펠트(Tempelhofer Feld)는 오랫동안 시민의 휴식 장소로 사용되어 왔다. 펠트 먹거리숲(Feld Food Forest: FFF)이라는 단체는 다른 10개 단체와 협력해 이 공원의 일부를 숲밭(Waldgarten)으로 바꾸고 있다. 베스트펠트 숲밭(Westfeld Waldgarten)은 템펠호퍼 펠트의 서쪽에 5,811m²규모로 조성되고 있다. 이 숲밭은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숲 가장자리를 모델로 삼았다. 그래서 일반적인 먹거리숲과는 다르게 키 작은 나무와 초본식물이 중심을 이룬다. 이 프로젝트는 2019년 9월, 15명이 참여한 '템펠호퍼 펠트에 먹거리숲 조성'이라는 페이스북 이벤트를 통해 탄생했다. 참여단체들은 이 숲밭을 자연 공간과 식량 생산 공간뿐 아니라 주민을 위한 공동체 활동 공간으로 만들고자 한다.

 

릭스도르프의 오래된 건물 뒤에 숨어 있는 1,000㎡ 규모의 먹거리숲에서 설립자 마틴 회프트(Martin Höfft)는 다양한 채소, 과일, 허브를 재배하고 있다. 그는 2011년 베를린으로 이주한 후, 도시 한가운데에 있는 이 더럽고 방치된 곳을 발견하고 땅을 일구기 시작했다. 이 먹거리숲을 끼고 있는 식당인 카페 보타니코(Café Botanico)는 회프트와 이탈리아 요리사인, 그의 장인이 함께 만들었다. 이 식당은 혁신적인 마켓 가드닝(텃밭에서 판매용으로 농작물 경작)을 선보이기 위해 탄생했다. 먹거리숲이 조성되면서 노이쾰른 자치구의 황무지였던 이곳이 퍼머컬처의 천국으로 탈바꿈했다. 회프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먹거리숲은 식량을 생산하는 곳만이 아닙니다. 장소의 생태적 가치를 높여주기도 하죠. 그리고 사람들이 찾아와 즐길 수 있는 생산성 높은 농지이기도 합니다.”

 

다양성에서 찾는 도시농업의 희망

최근의 울산·경북·경남 산불에서 보듯 앞으로 기후재앙이 점점 더 많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는 기후 비상사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현재의 먹거리 체계와 재래식 농업 구조를 바꾸는 등 우리 국토와 지구를 더 이상 파괴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베를린의 다양하고 풍부한 도시농업을 살펴보면서, 도시농업이 기후위기의 구원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더욱 깊어진다.

 

다양성은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체의 근본적 특성이다. 무엇이든 다양해야 생존가능성이 높아가고 서로 뒤섞여 새로움이 생겨나는 법이다. 생물다양성과 농업다양성이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한 가지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양성이 넘치는 베를린 도시농업을 들여다보면서 우리나라 도시농업은 어떠한지 되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