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을 죽이는 단작
농경의 시작은 아마도 곡식 농사였을 거라 추측합니다. 곡식 농사로 비로서 잉여식량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상추 배추 같은 채소 농사로 농경이 시작되었다고 보기에는 적절치 않잖아요? 과일도 그렇고 가축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가령 채소와 과일은 채집으로도 충분히 얻을 수 있었을 것이고 고기도 수렵으로 얻을 수 있었겠지요. 그리고 이런 먹을거리는 잉여식량이 생기기 쉽지 않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겁니다.
그럼 왜 곡식농사가 농경의 시작이라는 걸까요? 처음 야생 곡식을 발견한 사람은 저는 남자일 거라 추측합니다. 왜 그럴까요? 곡식류는 벼과식물이 많고 벼과는 자가수분 식물들이어서 군락하는 특성이 있어요. 군락하려면 아무래도 들녘이 유리합니다. 자가수분 식물은 남의 꽃가루가 아닌 자기 꽃가루를 받기 때문에 벌이나 나비 같은 벌레에 의존해 수분하지 않고 바람 불어 꽃가루가 떨어지면 밑에 있는 암꽃이 받아 수정하는 것이죠. 그래서 충매화가 아닌 풍매화라고 하지요. 벌이나 나비 같은 동물에 의해 수정하면 씨가 여기저기 골고루 퍼질텐데 바람에 의해 번식하다보니 멀리 퍼지질 못해 군락하게 된 걸겁니다.
야생 곡식이 군락하기 좋은 들녘은 아무래도 강가에 가깝기도 했어요. 말하자면 숲과 가까운 언덕 움막 주거지와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남자들이 강가 들녘으로 사냥이나 천렵 나갔을 때 발견한 게 야생곡식이었을 거라는 거지요. 게다가 채소는 매일매일 돌보며 수확해야 하기에 주거지 근처에서 재배했을 것이고 그래서 여성에게 적합했을 겁니다. 반면 곡식은 한꺼번에 특정 시점에 수확해야 하기에 매일 가보지 않아도 되었을 거니 수렵 나갈 때 돌보거나 날 잡아 한꺼번에 수확하러 가도 되니 남자들에게 적합했을 거라 보는 거죠.
그렇게 시작된 곡식에 의한 농경 혁명으로 잉여식량이 생기기 시작하자 여러 사회적 변화들이 동반되었습니다. 노동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생겼고 그들 중심으로 권력이 만들어졌겠지요. 거기에서 가부장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사회적인 얘길 하려는 건 아니에요. 이 곡식 농사는 자연스럽게 단작 농사로 이어진다는 겁니다. 바로 군락 특성 때문일겁니다. 또 들녘을 좋아하는 특성도 영향을 주었겠지요. 그럼 단작을 얘기하려는 거는 왜일까요?
단작이 바로 토양을 망가뜨리는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작물은 한 땅에서 한 종류만 심게 되면 그 종류만 좋아하는 생물들이 모여듭니다. 미생물도 벌레도 기타 생명들도 단순해져요. 뿐입니까? 한 종류만 심으면 땅 속으로 뻗어가는 뿌리도 단순해지지요. 길이도 비슷할 거고요, 뿌리를 통해 내뱉는 작물의 대사물질도 단순해지고, 작물의 생산활동으로 뿌리에 축적되는 양분도 단순해집니다. 다양성을 잃어버린 토양은 점차 토양의 남은 유기물을 고갈시켜 갑니다. 유기물이 없어진 토양은 바람과 폭우 등으로 쉽게 침식, 유실됩니다. 그러면 토양의 보수력도 말라가고 결국 사막화의 길로 가는 거지요. 물론 단작을 하면서 화학비료도 주고 퇴비도 주면서 임시방편으로 당분간은 버틸 수 있을 겁니다. 그게 얼마나 오래 갈까요. 임시방편일 뿐 아닐까요? 기후위기 시대에 이 문제는 머지않아 더욱 가속화될 우려가 큽니다.
단작은 연작, 광작으로 이어진다 했지요. 연작, 곧 같은 종류의 작물을 계속 이어서 심게 되니 위의 문제는 더 심각해지지요. 게다가 광작, 곧 같은 류의 작물을 드넓은 땅에서 재배하게 되면 한 지역이 사막이나 다름없게 됩니다. 한번은 스페인의 올리브 최대 단지가 있는 안달루시아 지방을 가보았는데 온 세상이 올리브만으로 덮여있는 곳을 몇 시간이나 달리는 겁니다. 경관이 너무 지루해 잠밖에 잘 일이 없는데 저는 자못 긴장하고 최대한 눈과 카메라에 경관을 담느라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곰곰 보니 두 가지가 안보이대요. 바로 새와 사람이 보이질 않는 거에요. 아~ 저건 올리브가 만든 사막이구나 했지요. 사람이 만든 거겠지만요. 이런 삶은 결국 지구를 사막의 별로 만들고 말 거라는 경고를 준 영화가 있지요. 바로 인터스텔라라는 에스에프 영화입니다. 끝없는 옥수수 밭 넘어로 엄청나게 밀려오는 흙먼지 폭풍이 결국 지구를 살 수 없는 별로 만든다는 암시를 준 영화지요. 이 거대한 흙먼지 폭풍은 1930년대에 실제로 있었던 미국 서부의 얘기에요. 서부에서 발생한 흙먼지 폭풍이 뉴욕이 있는 동부까지 날아갔다 하지요.*
근데 단작은 흙만 망가뜨린 건 아니에요. 단작은 나를 위해 농사짓는 게 아닌 남을 위해 농사짓는 문화를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말하자면 남에게 팔기 위해 농사짓기 시작했다는 거죠. 잉여식량이 부로 축적되기 시작했고 거기에서 빈부격차와 계급, 계층 갈등, 전쟁이 시작되었으니 아마도 단작은 만악의 시작일지 모릅니다. 게다가 단작은 붙박이 정주 사회를 고착시켰을 겁니다. 단작을 유지하려면 안정된 노동력을 유지해야 했을테니요.
사실 사람도 철새처럼 더울 때는 높은 곳이나 북쪽으로, 추울 때는 낮은 곳이나 남쪽으로 이동하며 사는 게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기후 변화가 오면 자기들 체질에 맞는 기후 환경으로 옮겨 가며 살면 기후 위기도 별 문제는 아닐텐데요. 먹을거리도 때에 따라 곳에 따라 먹게 되면 기후위기로 인한 식량위기도 큰 문제는 아닐 것 같고요. 땅도 망가뜨리지 않으니 사실 환경파괴도 없을 겁니다.
그럼 왜 단작은 땅을 망가뜨릴까요? 앞의 글을 읽으신 분들은 벌써 아실 겁니다. 단작하는 인삼은 땅을 망가뜨리지만 야생에서 다른 생명과 공생하는 산삼은 땅을 망가뜨리지 않는다 한 거 기억나시죠? 그렇다고 산삼처럼 키울 수 없으니 우리는 인삼과 산삼 사이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한 겁니다. 저는 그게 전통적으로 이어온 윤작, 혼작 방식이라고 봅니다. 또 서두가 길어졌네요. 죄송합니다.
흙을 살리는 윤작, 혼작
드디어 본론입니다. 그럼 어떻게 윤작, 혼작을 할 수 있을까요? 우선 윤작, 혼작하는 농부는 소농이라는 점을 짚고자 합니다. 대농이 윤작, 혼작을 하기가 쉽지 않아요. 대농은 늘 단작에 유혹을 받지요. 그렇지만 아주 드물게 윤작, 혼작을 나름의 방법으로 실천하는 대농도 있긴 합니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그런 분들을 소개할까 합니다만......
윤작, 혼작하는 방식은 어떤 형태로든 서로 다른 성격의 작물을 이어심거나 섞어심어 그를 통해 토양을 건강하게 유지시켜주는 일입니다. 그 중 윤작은 한 작물을 재배해 수확하고 나면 다른 작물을 심어 재배하는 걸 말합니다. 벼 수확하고 나서 보리를 심는 이모작 방식이 대표적이죠. 벼와 보리는 같은 벼과 식물이라 비슷할 수 있지만 벼는 여름을 나고 보리는 겨울을 나는 점에서 다르죠. 생육 시기가 다르니 서로 경쟁할 일이 없어요. 또한 보리는 한 겨울 토양을 한파와 건조로부터 보호해줍니다. 당연히 겨울의 매서운 북풍도 막아주지요. 저는 이를 작물멀칭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작물을 심어 토양을 보호하는 거죠.
또 대표적인 윤작으로 마늘과 들깨를 이모작 하는 재배입니다. 마늘엔 고자리파리라는 해충이 골칫거리입니다. 그런데 이 놈이 들깨 향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들깨를 수확하고 그 자리에 마늘을 심으면 고자리파리를 못 오게 할 수 있는 거지요.
윤작 중에 재밌는 이름으로 그루갈이라는 게 있습니다. 한자로는 후작(後作)이라고 합니다. 한자를 보면 뒤에 심는다는 뜻을 쉽게 알 수 있죠. 말하자면 앞의 작물(전작前作)을 수확하고 나서 심는다는 것입니다. 근데 순 우리말인 그루갈이가 이해하기 좀 난해하죠. 말 자체를 보면 그루는 식물을 베고 남은 밑동입니다. 갈이는 그 밑동을 갈아 엎는다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앞 작물의 수확 후 남은 밑동을 갈아엎어 후작물을 심는다는 뜻이 되는 겁니다.
혼작은 토양을 망가뜨리는 작물을 토양을 보호해주는 작물과 함께 심는 방식이 대표적입니다. 옥수수나 목화처럼 거름을 많이 먹는 작물은 토양에 거름을 만들어주는 콩과 함께 심는 겁니다. 옥수수는 식량이 아니고 한여름 장마철 한 때 먹는 군것질 먹거리라 많이 심지 않으니 콩 밭 둘레로 심었어요. 목화는 옷이나 이불을 해 입어야 하는 필수 작물이어서 군것질 용 옥수수처럼 조금 심을 수 없었으니 콩 한 줄 심으면 목화 한 줄 심는 식으로 좀 더 많이 재배했지요.
대표적인 혼작 방식으로 인디언 세 자매 농법이 있어요. 옥수수 콩 호박을 혼작하는 건데요, 콩은 질소를 고정해 비료를 많이 먹는 옥수수와 호박에 도움을 주고, 호박은 넓은 잎으로 그늘을 드리워 풀 발생을 억제하고, 옥수수는 지주 역할을 합니다. 그 말고도 시간 차를 이용한 의미도 있지요. 짧고 빨리 자라는 옥수수를 먼저 심어 여름 중에 수확을 하고, 두번째 심은 콩은 옥수수와 함께 집중적으로 자란 뒤 옥수수 수확하고 난 후엔 꽃 피워 콩 코투리를 맺고 영글어 갑니다. 호박은 자칫하면 콩을 덮어 그늘을 드리울 수 있기 때문에 콩을 먼저 심고 콩이 본격적으로 성장할 때 호박을 심습니다. 심는 위치도 콩 바로 옆이 아닌 옥수수 옆에다 심어 옥수수 대를 타고 올라가게 하여 콩을 보호합니다. 그래서 혼작 방식엔 시간 차를 이용하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세 자매 농법엔 우리식도 있습니다. 고추를 주 작물로 심고 부작물로 들깨와 수수를 심는 거에요. 고추를 줄 지어 심은 후 들깨를 2미터 간격으로 드물게 심고 수수는 3미터 간격으로 더 드물게 심는 겁니다. 들깨의 향은 고추 열매를 구멍 뚫고 들어가 속을 파먹는 담배나방 애벌레 예방할 수 있습니다. 수수는 키가 크지만 잎은 그리 넓지 않아 고추에 그늘을 드리우진 않으면서 뿌리의 길이도 다르고 좋아하는 양분도 달라 고추와 경쟁하지 않아요. 오히려 서로 궁합이 맞아 좋은 작용을 한다네요. 그런 식물간의 작용을 아레로파시(Allelopathy), 곧 타감(他感) 작용이라 합니다. 물론 경쟁적인 타감작용도 있습니다. 식물은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화학물질을 발사하여 자기를 방어하기도 하고 서로 협력하기도 합니다.
요즘엔 토마토를 바질과 함께 심는 게 많더라구요. 혼작도 유행이 있는가 봅니다. 토마토는 대파와도 좋습니다. 그래서 혼작을 하려면 경쟁하지 않고 협력하는 작물 관계를 파악하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윤작, 혼작 말고 재밌는 작부체계가 있는데 바로 간작, 곧 사이짓기입니다. 사이짓기로 재밌는 사례로는 봉동생강 재배법이 있습니다. 전북 완주의 봉동은 최초의 생강 시배지로 유명하죠. 재밌는 것은 생강을 보리밭 사이에다 심는다는 겁니다. 보리를 심을 때 생강 심을 자리를 대비해 줄 간격을 미리 좀 넓게 심습니다. 그리고 보리를 수확하기 한 달 전쯤 보리 줄 사이에 생강을 심습니다. 보리를 이삭만 수확하고 남은 보릿대를 생강에 덮어줍니다. 생강은 습기를 잘 유지해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보리를 수확하고 나서 심으면 때가 늦고, 보릿대를 덮어주기도 힘들죠.
간작은 이런 식으로 시간 차를 이용하는 방식입니다. 벼와 보리를 이모작하는데 남부지방은 벼 수확 후 보리 심는 게 자연스러운데 중부지방은 좀 추워 벼 수확 후 심으면 늦을 수가 있어요. 그럴 때 벼 수확 전 사이에다 보리를 심는 거지요.
다음 글에선 다년생 나물과 유실수 및 특용수와 혼작하는 법과 채집에 대한 얘길 들려드리겠습니다.
* 1934년 더스트보울(Dust bowl)이라는 이름의 모래폭풍이 잘못된 농업방식과 과잉 목초지 과잉으로 생긴 현상으로 약 10넌 동안 지속적으로 발생해 농경지를 황폐화하고 동부까지 날아가 덮쳤다고 한다. https://history-today.tistory.com/entry/1934-5-11-%EB%AF%B8-%EC%A4%91%EC%84%9C%EB%B6%80-%EC%B5%9C%EC%95%85%EC%9D%98-%EB%8D%94%EC%8A%A4%ED%8A%B8-%EB%B3%B4%EC%9A%B8%EB%A1%9C-%EB%86%8D%EC%9E%91%EB%AC%BC-%EC%B4%88%ED%86%A0%ED%9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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