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텃밭 무료 임대 공모대회
이창우 / 한국도시농업연구소장
그린 얼로트먼츠(Green Allotments: 이하 GA라고 한다.)라는 자선단체가 2개의 얼로트먼트 부지를 얻을 기회라는 특별한 상금을 내걸고 공모대회를 시작했다. 내가 사는 동네 근처에 텃밭으로 이용할 적당한 땅이 있다면 우리 동네에 텃밭이 필요한 이유를 호소력 있게 적어 내면 된다. GA는 1차, 2차 심사를 거쳐 최종적으로 약 12,000㎡ 크기의 텃밭 부지 2곳을 선정해 30년간 무상으로 임대해준다(실제로는 명목상의 임차료를 낸다. 예를 들면 1년에 1원만 내는 방식이어서 무료라고 보면 된다.). 30년 뒤 다시 연장할 수도 있다.
영국의 도시농업은 크게 3가지 형태가 있다. 공동체텃밭, 도시농장, 얼로트먼트가 그것이다. 공동체텃밭은 유휴지를 임시로 사용하는 경우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과 같고 여기에 동물이 포함되면 도시농장이라 한다. 얼로트먼트는 영국 특유의, 단위 구획 면적이 넓은 도시텃밭으로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공동체텃밭이나 도시농장이 시민단체 주도라면 얼로트먼트는 지자체 주도라는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GA의 텃밭 무료 임대 공모대회를 알아보기 전에 영국 얼로트먼트의 현황을 살펴본다.
영국 얼로트먼트의 현주소
영국의 얼로트먼트는 구획수로 따져 현재 전국에 33만 구획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2023년 9월 전국(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지자체를 대상으로 한, 영국 그린피스의 조사에 따르면 대기기간은 약 3년이고 대기자수는 17만 4,183명에 이른다. 대기자수가 10년 사이에 2배로 늘어났다. 한편 GA에 따르면 최장 대기기간을 기록하고 있는 곳은 런던의 캠던 자치구로 대기기간이 17.5년이다. 런던 이즐링턴 자치구는 13년,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 시는 8.7년이나 된다.
얼로트먼트 1구획의 평균 면적은 250m2이다. 4인 가족이 1년 내내 먹을 채소를 생산하기에 적당한 면적이어서 정해진 관행이다. 하지만 대기자가 많아서 구획의 크기를 줄여가는 추세다. 텃밭구획 사용료는 대체로 연간 4만원∼20만원인데 더 싸거나 비싼 곳도 있다. 얼로트먼트가 없는 지자체의 경우, 6명 이상의 주민(각각 다른 가구여야 한다.)이 청원하면 지자체는 얼로트먼트를 확보해서 주민에게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얼로트먼트법(1908년) 제23조의 규정이다. 단 런던 도심부는 유휴공간이 없어 예외다.
지자체가 전체 얼로트먼트의 87%를 소유하고 있다. 지자체가 소유한 얼로트먼트는 법에 의해 보호를 받기 때문에 법정 얼로트먼트라고 한다. 법정 얼로트먼트는 중앙정부 승인 없이는 없앨 수 없다. 만약 문을 닫아야 할 경우, 지자체는 경작불가 사유를 증명하고 해당 장소에서 1.2km 이내에 대체지를 찾아야 한다. 영국 전체 얼로트먼트의 약 8%는 민간이 소유하고 운영한다. 민간 소유 얼로트먼트는 폐쇄 시 도시농부를 보호할 방법이 없다. 기타 얼로트먼트는 지자체가 민간 토지소유자에게서 임시로 토지를 빌려 경작공간을 제공하는 경우로, 해당 토지는 다른 용도로 개발될 가능성이 크다. 얼로트먼트의 2/3는 지자체가 운영하고 나머지는 위탁 등 다양한 방식으로 운영한다. 운영방식이 어떠하든 각 얼로트먼트는 지자체의 지원을 받으면서 경작자들로 이루어진 협회가 자체 규약에 따라 독립적으로 관리한다.
얼로트먼트 무료 임대 공모대회
GA는 설립 목적이 비영리 민간 얼로트먼트 부지를 새로 조성하는 데 있다. 얼로트먼트 대기자가 늘고 텃밭 사용료가 계속 올라가면서 국민의 불만이 높아가자 이러한 단체가 생기기에 이르렀다.
이번의 얼로트먼트 무료 임대 공모대회와 관련하여 GA의 홈페이지에는 이용 약관, 참가 신청서, 자주 묻는 질문 등 참가에 필요한 정보가 올라와 있다. 참가자는 상금 수여 시점까지 비영리단체를 구성해야 한다. 잉글랜드와 웨일스에 거주하는 18세 이상 성인만 참가할 수 있다.
전국 얼로트먼트 주간 첫날인 2024년 8월 12일에 시작한 공모대회는 두 단계를 거친다. 1단계인 관심 표명 단계를 통과하면 2단계인 정식 지원 단계에 들어간다. 참가 신청서를 제출한 후 1단계를 통과한 참가자는 2단계 정식 신청서를 제공받게 된다. 정식 신청서를 제출한 후, 참가자는 2025년 3월 중 GA측과 온라인 인터뷰를 해야 한다. 최종 당선자 2명은 내년 3월 말 GA 웹사이트에 발표된다.
상금은 GA와 30년 동안 무상으로 얼로트먼트 임대차 계약을 맺을 수 있는 기회다. 이 상에는 GA의 지식, 기술, 교육 지원이 포함된다. GA는 새로운 얼로트먼트 부지를 매입하고 소유권을 가진다. GA는 토지 매매와 양도 절차가 끝나는 대로 지체 없이 상금을 주어야 한다.
참가자는 다음 사항을 입증해야 한다.
- 얼로트먼트로 사용하기에 적합한 토지를 확인했다는 증거
- 확인된 토지 인근에서 얼로트먼트에 대한 수요가 있다는 현재 증거
- 얼로트먼트 부지를 관리할 비영리단체를 구성했거나 구성 중이라는 증거
- 자발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얼로트먼트 부지 관리를 위한 교육 및 멘토링에 참여할 의지와 역량
이번 공모대회에서 제공할 얼로트먼트 부지 규모는 3에이커(약 12,000㎡)이며 경작인수는 40∼50명을 예상하고 있다. 얼로트먼트 예상 부지는 사람이 모여 사는 동네에서 1.6km 이내에 있어야 한다. 차량 접근성도 좋아야 한다.
기후친화적인 먹거리 체계 구축
자선단체인 그린 얼로트먼츠는 기부금을 재원으로 상당한 규모의 텃밭 부지를 조성해서 무료로 지역사회에 나누어 주겠다는 아이디어를 실천에 옮기고 있다. 이 공모대회는 BBC 방송에서 소개되었고 일간지인 가디언에서 다루어지기도 했다. 영국 국민의 도시농업에 대한 관심과 불만을 동시에 반영한 사업이라 하겠다.
영국의 17만 명이 넘는 얼로트먼트 대기자수는 무너진 먹거리 체계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보고자 하는 사람들의 열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영국 얼로트먼트 무료 임대 공모대회 소식을 접하면서 우리나라의 현실을 돌아보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영국과 마찬가지로 경작하고 싶은 시민들에게 충분한 텃밭이 제공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공동체텃밭은 전국적으로 개수도 적고 면적도 작다. 영국에서는 시민의 경작권을 법으로 인정한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지자체가 시민에게 텃밭을 제공할 법적 의무가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꿈도 꿀 수 없다.
기후친화적인 먹거리 체계를 구축하는 일이 시급하다. 먹거리 이동거리를 단축해야 한다. 육류 소비를 줄이고 채소 섭취를 늘리면 크게 도움이 된다. 도시농부가 기후위기를 헤쳐 나갈 구원자다.
참고문헌
- Patrick Barkham, “Ready, set, grow: new allotments for grabs in contest”The Guardian, 2024. 11. 9.
- https://www.greenpeace.org.uk/news/giant-living-artwork-unfurled-at-westminster-as-waiting-lists-for-allotments-double-in-a-decade/
- https://greenallotments.org.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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