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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

[이창우 컬럼] 자유와 평등이 가득한 덴마크의 도시농업

아메바! 2024. 10. 8. 18:42

자유와 평등이 가득한 덴마크의 도시농업

이창우 / 한국도시농업연구소장

 

빅토르 악셀센은 지난 8월 안세영의 인스타그램에 존경하고 지지한다는 댓글을 달았다. 2024 파리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금메달을 딴 안세영 선수가 대표팀 운영에 대해 작심 발언을 한 데 공감을 나타낸 것이다. 악셀센은 남자 단식 금메달리스트로 덴마크 사람이다. 그는 국가대표팀을 떠난 후에도 세계대회에 나가고, 개인 후원 계약도 맺고, 선수의 권리로서 자신에게 맞는 라켓과 신발을 쓸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 어떤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이렇게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면서 사회의 평등을 추구하는 덴마크가 부러웠다. 그러다가 이런 덴마크의 도시농업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덴마크 도시농업의 역사나 현황, 사례 등이 궁금해졌다. 이런 의문들을 수도 코펜하겐의 도시농업을 중심으로 풀어본다.

옥상텃밭 외스터그로ØsterGRO (출처 : https://www.srtoday.co.kr/코펜하겐-옥상-농장이-주는-교훈-지역-먹거리의-미래/ )

1. 덴마크 도시농업의 어제와 오늘

북유럽 복지국가인 덴마크는 면적이 4만 3,000㎢이고 인구는 600만 명이다. 농업 선진국이며 국가청렴도는 세계 1위다. 덴마크 하면 안데르센의 인어공주와 레고 정도가 떠오른다.

 

덴마크에서는 19세기 말에 가난한 노동자를 위한 텃밭인 얼로트먼트가 국공유지에 조성되기 시작했다. 제1, 2차 세계대전 사이에 얼로트먼트는 10만 개에 달했다. 현재 전국에 6만 개가 있다. 한편 공동체텃밭은 1994년 코펜하겐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이듬해에 풀뿌리 도시농업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도시텃밭 네트워크가 설립됐다. 현재 덴마크 전국에 공동체텃밭이 100여 곳 있고 코펜하겐에만 15곳 이상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코펜하겐의 뇌레브로(Nørrebro) 지역에 도시텃밭이 많다. 코펜하겐 북쪽 외곽에 있는 뇌레브로는 한때 이민자들이 모여 살고 범죄율이 높은 빈민가였다. 지금은 예술가들이 주말마다 공연을 하고 전시회를 열어 코펜하겐에서 가장 뜨는 지역이 됐다. 2021년에는 글로벌 매체 타임아웃 지가 ‘세계에서 가장 멋진 동네’로 뇌레브로를 선정하기도 했다.

 

코펜하겐은 2005년경부터 도시의 친환경 발전을 중시해 왔다. 살기 좋은 친환경 도시라는 자부심이 있다. 2009년 시의회는 2015년까지 2005년 대비 탄소를 20% 줄인다는 기후계획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를 이어받아 2012년에는 탄소중립 기후계획 2025를 수립하기도 했다.

 

2009년 코펜하겐에서 열린 제15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15)가 합의 도출에 실패하면서, 덴마크의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좌절감을 느꼈다. 이 좌절감이 덴마크 도시농업 운동의 밑거름이 됐다. 2010년 코펜하겐시의 한 공무원이 뉴욕을 방문해 도시농업 현장을 둘러본 후 감명을 받고 귀국했다. 이때부터 공무원들이 도시농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Rutt, 2020).

 

지난 15년간 코펜하겐을 비롯한 덴마크의 여러 도시에서 많은 도시텃밭이 생겨났다. 예를 들어 코펜하겐 최초의 공동체 옥상텃밭인 TOP이 2010년에 문을 열었다. 그 사연을 잠시 들어보자. 뇌레브로 지역 녹화를 의제로 열린 구의회 회의에 한 시민단체 활동가가 참석했다. 그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먹거리를 재배하자고 제안했다가, 농촌에 가서 살아라고 핀잔을 들었다. 회의가 끝난 후 2명의 다른 회의 참석자가 다가와 동감한다며 그를 끌어안았다. 기후변화, 예술, 치유에 각각 관심이 많던 이 3명이 힘을 합쳐 TOP을 만든 것이다.

 

덴마크의 도시텃밭은 상향식 도시계획 실험을 통해 사회적으로 정의로운 친환경도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문화 활동가 단체가 대부분 관리한다. 하지만 도시재개발이나 사회통합 전략을 지원하는 공공기관이나 개발업자, 협회가 텃밭을 조성해 관리하기도 한다. 도시텃밭의 장소 만들기와 사회적 중요성은 도시 녹화와 로컬푸드 생산에 대한 비전과 함께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원동력이다.

 

2015년 코펜하겐시는 활기차고 책임감 있는 첨단 도시를 만들기 위한 10년 장기계획 ‘코펜하겐 공동체’를 수립했다. 이 비전의 일환으로 그해 코펜하겐시는 공한지 또는 기존 공공 공간에 도시텃밭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는 핸드북을 펴냈다. 이 책자는 코펜하겐에서 일어난 새로운 공동체텃밭 운동 물결의 정점을 찍었다. 이 책자에는 경작부지를 찾아 합법적으로 빌리고 계획을 세우는 방법이나 일반시민의 이용을 허용하고, 토양오염을 정화하는 방법까지 설명되어 있다.

도시텃밭을 만드는 법 (핸드북 출처 : https://kk.sites.itera.dk/apps/kk_pub2/index.asp?mode=detalje&id=1352 )

 

코펜하겐 도시텃밭은 대부분 지역사회가 중심이 되고 대중에게 개방되지만 조직, 관리, 재정 면에서 모습이 다양하다. 시민이 주도하는 곳도 있고, 지자체 또는 개발업자가 주도하는 곳도 있다. 시민 주도 도시텃밭은 오래 가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사회활동과 텃밭경작, 모금 등 모든 일을 자원봉사자들이 맡아 하는 것이 큰 부담이기 때문이다. 뷔하우엔 2200(Byhaven 2200: 덴마크어로 by는 도시, haven은 텃밭 또는 정원을 뜻한다.)과 같이 공원에 도시텃밭을 조성한 사례도 있었다. 그곳을 관리한 시민단체는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노력해야 했다. 하지만 다양한 사용자 그룹의 요구와 관심사를 고려하다보니 갈등이 생겨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뷔하우엔Byhaven 2200 (사진출처 : https://detours.biz/projects/byhaven-2200/ )
코펜하겐의 도시텃밭 캡쳐화면 (출처 : https://www.kk.dk/brug-byen/byens-groenne-oaser/byhaver-i-koebenhavn )

 

 

지난 10여 년 동안 지속적으로 운영해온 모범 사례도 여럿 있다. 여기서는 공공기관 운영 사례인 순홀름 도시텃밭을 살펴본다.

 

2. 순홀름 도시텃밭(Byhaven Sundholm)

코펜하겐의 순홀름은 취약계층을 위한 다양한 공간과 자원을 제공하는 시립기관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순홀름 취약계층 지원센터(이하 센터라 한다.)는 노숙자 쉼터다. 2013년 코펜하겐시 도시재생사업부서가 센터와 협력해 이 지역에 도시텃밭을 조성했다(Lamm and Tietjen, 2024).

 

이 텃밭부지는 한때 양묘장이었는데, 마약을 사고파는 장소로 이용되곤 했다. 이제 주변의 도시적 분위기와 대조를 이루는 아름답고 아늑한 녹색공간으로 변한 이곳에는 텃밭, 닭과 토끼, 온실, 퇴비장, 모임 장소 등이 있다.

 

관련 시설을 만들 때 여러 계층의 이용자를 고려했다. 예를 들면 어린이를 위한 낮은 상자텃밭과 노인이나 장애인을 위한 높은 상자텃밭이 있다. 커피잔이나 농기구를 놓을 수 있는 작은 테이블이 붙어 있는 상자텃밭도 있다.

 

조성 초기단계에 우선 센터 이용자들이 텃밭 준비와 조성에 참여하게 한 후에 다른 기관과 이웃주민도 참여시킨다는 전략을 짰다. 취약계층 시민이 텃밭의 개척자로서 텃밭에서 환영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사회복지사이면서 도시농부인 직원 1명이 이곳을 관리한다. 약물 남용 문제가 있는 사람도 경작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주민들도 텃밭을 이용할 수 있으며, 인근 학교와 기관은 교육 목적으로 텃밭을 사용한다. 모든 사람이 참여할 수 있게 하되 특정 그룹이 우위를 점하지 않게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운영 원칙이다. 순홀름 도시텃밭은 큰 성공을 거두어 한때는 텃밭이용자들이 불편할 정도로 외부인의 방문이 많았다.

순홀름 도시텃밭 (출처 : www.byensnetvaerk.dk)

 

3. 기후전환사회를 위한 도시농업

 

덴마크의 도시농업은 얼로트먼트까지 포함하면 역사가 오래 되지만, 공동체텃밭은 2010년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코펜하겐 COP15 실패 이후 기후위기 각성이 덴마크 도시농업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 시민이나 지자체 중 누가 주도하든 언제나 지역사회가 중심이다. 도시농업의 목적이나 운영에서 우리나라와 닮은 점도 보인다.

 

도시농업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그래도 도시의 사회적 문제를 치유하는 좋은 수단이 된다. 기후전환사회를 위한 필수 요소이기도 하다. 이런 시사점을 덴마크 도시농업에서 얻는다. 악셀센이 안세영에게 공감을 보였듯이, 자유와 평등에 기초해 공동체의 가치를 중시하는 덴마크 도시농업 활동가에게 존경과 지지를 보내고 싶다.

 

 

참고문헌

  • Bettina Lamm and Anne Tietjen, 2024, “Chapter 5 The Rise and Fall of Public Urban Gardens: Four Cases from in and around Copenhagen”in Beata Sirowy and Deni Ruggeri eds., Urban Agriculture in Public Space: Planning and Designing for Human Flourishing in Northern European Cities and Beyond, Springer, pp101-116.
  • Rebecca L. Rutt, 2020, “Cultivating urban conviviality: urban farming in the shadows of Copenhagen's neoliberalisms,”Journal of Political Ecology, vol 27, pp612-6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