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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

[흙에서 살다 4] 윤작 혼작의 확장

아메바! 2024. 12. 13. 13:06

월동작물과의 윤작

우리의 주식 작물은 대부분 여름을 나죠. 대표적으로 벼와 곡식류가 그렇고 고추와 열매 맺는 과채류가 그렇습니다. 여름 나는 작물이 주연배우라면 겨울을 나는 작물은 조연배우쯤 될 겁니다. 밀, 보리가 그렇고 마늘, 양파가 그렇지요. 그렇지만 조연 없이 주연 있을 수 없듯이 월동 작물 없으면 여름 작물도 없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월동 작물도 예전엔 주연 배우나 다름 없었어요. 대표적으로 보리밥은 쌀밥에 버금가는 주식이었습니다. 마늘도 우리에겐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 양념 작물이죠. 특히 우리는 세계에서 마늘을 제일 많이 먹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월동작물의 의미는 주식이든 부식이든 그것을 떠나 우리의 토양을 지켜주는 아주 고마운 작물이라는 겁니다. 일단 여름 작물 수확 후 월동 작물을 심는 것을 윤작이라 하죠. 월동 작물을 심지 않고 겨울에 땅을 방치해두면 땅이 좋아질까요? 휴경(休耕)한다고 해서 땅이 좋아질까요? 토양은 방치해두면 무조건 좋아질까요? 사실 서양의 생태주의 사상은 이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우리는 좀 다릅니다.

 

우리는 방치하는 게 능사가 아니고 사람이 적당히 개입하는 게 최선이라 봤습니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로 보았던 거지요. 그래서 서양의 토양 관리법엔 휴경이 매우 중요한 반면 우리는 윤작 혼작을 잘 활용하기에 그만큼 중요하지 않습니다. 서양의 농업은 기본적으로 단작과 연작이 발달해 휴경이 필수입니다. 밀 농사와 방목이 더 그걸 부추깁니다. 농법 자체가 토양 수탈 농사라 토양을 정기적으로 쉬게 해주어야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휴경할 만큼 땅이 넓지도 않거니와 윤작 혼작법으로 충분히 토양의 지력을 지켜왔지요. 그 중에 핵심이 바로 겨울 농사입니다. 여름 농사만 짓고 겨울엔 사막처럼 방치해 두면 연작 효과가 생겨 토양은 좋아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토양은 여름 폭염과 폭우로 제일 망가지고 그 다음으로 토양을 망가뜨리는 것은 겨울의 혹한과 가뭄입니다. 기후 온난화로 요즘은 혹한보다 겨울 가뭄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이 겨울 가뭄으로부터 토양을 보호하는 기술이 발달했는데 바로 월동작물 농사가 대표적입니다.

 

물론 토양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겨울 농사만 있지 않았어요. 겨울 작물을 심기 힘들 경우 제일 일반적인 것은 겨울 길목인 동지 즈음해서 땅을 깊게 가는 것입니다. 대략 20센티 정도로 깊게 갈아 엎었지요. 그럼 그렇게 갈린 표토층이 심토층을 춥고 가문 겨울 날씨로부터 보호해주는 겁니다. 일종의 말하자면 흙으로 흙을 덮어 보호해주니 저는 그걸 흙 멀칭mulching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다음으로 벼 수확 후 보리를 심지 못하는 중부지방과 그 이북 지역에선 논을 깊게 갈고 물을 담았습니다. 물로 땅을 보호하는 겁니다. 저는 이걸 물 멀칭이라 했지요.

 

그럼 월동작물로 땅을 보호하는 건 당연히 작물 멀칭이겠죠. 물론 조상들이 땅을 보호할 목적으로 작물을 심은 건 아니겠죠. 당연히 먹기 위해 심었을 겁니다. 토양 보호는 부수효과였겠죠.

 

월동 작물은 의외로 많습니다. 앞의 밀, 보리, 마늘, 양파 외에도 대파, 쪽파, 시금치도 있고요, 배추와 무도 보온만 해주면 겨울을 넘겨 봄에 새싹을 올리지요. 봄동 배추가 바로 겨울을 나고 새싹을 올린 배추에요.

 

우리 도시농업에서 제일 아쉬운 점은 바로 이 월동농사를 못한다는 사실이에요. 대부분의 도시텃밭이 봄에 개장해 가을에 폐장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겨울을 사막처럼 보냅니다. 그러니 도시농부의 먹거리는 반쪽짜리에 불과하고 토양을 살리는 환경보호 효과도 반감됩니다. 게다가 봄 되면 새로운 사람에게 땅을 분양해주니 공동체 함양도 남 얘기에 불과합니다. 매번 사람이 바뀌니까요. 저는 그래서 지속적인 경작권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공동으로 힘을 합쳐 땅을 매입하던가, 농촌의 방치되어 있는 땅을 도시농부들이 안정적으로 경작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던가 해야 합니다.

 

다년생과의 혼작

농작물은 일년생 식물이 대부분이죠. 그 다음으로는 위에서 말한 월동(越冬) 작물, 다른 말로 하면 한 해를 넘긴다 해서 월년생(越年生) 작물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많은 게 이른바 다년생 식물입니다. 재밌는 것은 이 다년생 식물은 야생 식물이 대부분이라는 점입니다. 야생 식물이기에 이 식물들은 또한 자생식물입니다. 말하자면 사람의 재배 과정이 없이 오랜동안 우리 땅에서 스스로 살아 온 식물입니다.

 

이 풀들은 오랜 세월 자연의 풍파 속에서 적응해 왔기에 우리 땅과 기후에 맞춰 왔습니다. 다르게 보면 야생 식물은 그 지역의 흙과 날씨를 가장 많이 닮았죠. 그런 식물을 먹고 살아 온 사람도 결국 마찬가지일겁니다.

 

반면 일년생 작물들은 대부분 귀화식물이 많습니다. 만주와 한반도가 원산지인 메주콩만 빼고는 말이죠. 특히 일년생 작물 중 임진왜란 전후로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들이 많아요. 고추, 옥수수, 고구마, 감자 등이 대표적이죠. 그보다 들어온 지 더 짧은 것으로는 토마토가 있지요. 이런 작물들은 병이 많아요. 농약도 많이 치고, 물도 많이 주고, 비료도 많이 주는데다 비닐하우스 재배를 많이 합니다. 반면 야생 식물인 냉이나 쑥이나 각종 산나물 들나물은 병에 강하죠. 냉이가 고추처럼 탄저병에 걸렸다는 얘길 들은 적은 없잖아요? 이건 아마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자생식물보다는 훨씬 짧아 아직 우리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우리 환경에 오래동안 적응해 건강하고 우리 몸과 입맛에도 맞는 야생 식물보다 사람들은 왜 병에도 약한 재배 식물을 더 좋아할까요? 아마도 우리의 야생 식물엔 과채류가 별로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그렇더라도 엽채류는 우리의 야생 식물이 훨씬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요즘엔 그조차 귀화식물인 재배채소가 많은 건 좀 아쉽기는 합니다.

 

우리 나라는 야생식물, 곧 자연산 들나물 산나물이 매우 풍부한 지역입니다. 한반도는 빙하기가 짧아 그만큼 식물의 역사가 깁니다. 또 그만큼 먹을 수 있는 나물들이 많았습니다. 구석기 채집 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인 고인돌이 세계에서 한반도에 제일 많이 분포하는 것은 먹을 게 많았다는 반증이고 저는 그걸 풍부한 자연산 나물 때문이라고 보거든요, 특히 서해안에 많이 분포하는 건 조개 등 단백질 섭취원이 펼쳐진 갯벌도 큰 역할을 했겠으나 산과 숲이 많은 강원도에도 고인돌이 발견되는 걸 보면 어디에나 자생한 야생 식물, 곧 나물들이 큰 기여를 했을 거라는 거죠.

 

이런 들나물 산나물은 실로 없는 데가 없을 정도로 어디에나 펼쳐져 있기에 따로 밭을 만들 필요가 없었습니다. 숲이나 밭이나 자투리 공간, 길가나 논둑 밭둑, 도랑, 집 마당과 울타리 주변 어디에나 씨 뿌리지 않았는데도 절로 자랐습니다. 우리 산천의 토양을 지켜 온 파수꾼이라 해도 손색이 없지요. 이런 풀들을 잡초라 여기고 제초제 뿌리고 비닐을 덮고 기계로 갈아버리면 우리의 토양은 근본이 약해지고 말 겁니다.

 

저는 그래서 이런 자연산 나물들과 재배 채소들이 공존하는 농지 경관을 강조합니다. 말하자면 재배 채소가 자라는 두둑은 신석기 농경문화가, 고랑이나 경계지 또는 길섭에는 구석기 채집문화가 공존하는 경관이 참으로 생태적인 모습이라 생각하지요. 말하자면 야생과 재배가 공생하는 윤작혼작의 확장이자 토양을 보호하는 생물다양성의 보고라 역설합니다. 제가 이른바 사계절 내내 먹거리 생명이 살아 숲을 이루는 먹거리숲을 제안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