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우 / 한국도시농업연구소장
모든 시민이 농부이고 모든 택지가 농지인 곳이 있다. 이곳에서는 도시와 농촌을 구분하지 않고, 시민과 농민을 가르지 않으며, 택지와 농지를 구별하지 않는다. 네덜란드 알메러(Almere) 시의 오스터볼드(Oosterwold)가 바로 그곳이다. 이글은 도시농업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오스터볼드를 소개한다.
알메러 시는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에서 동쪽으로 30km 떨어져 있다. 면적이 248.77㎢이고 인구가 22만 명으로 꽤 큰 도시다. 1976년에 택지 개발 사업이 완료된 이후 1984년에 시로 승격되었다. 알메러 시의 동부 외곽에 오스터볼드가 있다. 면적 43.63㎢인 오스터볼드는 도시농업 특별지구라고 할 수 있다. 알메러 시는 미래 먹거리 수요의 10%를 오스터볼드에서 자체 공급할 계획이다. 오스터볼드의 각 가구는 대지의 51% 이상을 도시농업 용도로 이용해야 한다. 주택 건축 허가 신청을 할 때 도시농업 계획도 함께 제출해야 한다.
오스터볼드는 크게 제1지구와 제2지구로 나뉘고 제1지구는 다시 1a구역 1b구역으로 나뉜다. 1a구역은 면적 700ha로 2016년에 개발이 시작되었다. 1b구역은 350ha로 2021년에 개발이 시작되었다. 면적이 2,850ha인 제2지구는 2024년 이후로 개발이 예정되어 있다. 행정구역상 제1지구는 알메러 시에 속하지만 제2지구는 제이볼더(Zeewolde) 시(268.9㎢)에 속한다. 2020년까지 420가구 1,600명의 주민이 입주했다. 2022년 말 현재 1,000가구에 3,300명의 주민이 오스터볼드에 산다. 전체 지구가 개발 완료되면 15,000가구, 40,000명 거주가 예상된다. 어린이까지 포함한다면 40,000명의 도시농부가 생겨나는 셈이다.
오스터볼드 도시농업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조사 연구가 몇 차례 있었다. 2019년의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8%가 취미나 여가로 농사를 짓고 있고, 각 가구의 경작 면적은 500㎡∼5,000㎡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Jansma and Wertheim-Heck, 2022). 2020년의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5%가 농업과 관련 없는 직업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Jansma and Wertheim-Heck, 2024). 하지만 도시농부 대부분이 채소(96%)나 꽃(84%)을 재배하고 있고, 양봉(9%), 포도원(20%), 축산(51%)을 한다는 응답자도 있었다. 2021년 드론을 이용하여 필지 199곳을 촬영한 사진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도시농업 형태가 매우 다양했다. 여가 활용을 위한 텃밭이 있는가 하면, 대규모 축산을 하거나 포도를 재배하거나 종묘나 원예를 전문적으로 하는 직업적인 농업 활동도 확인되었다(Jansma and Wertheim-Heck, 2024).
오스터볼드 개발공사의 지원을 받아 2020년 주민들은 생산된 농작물을 판매하기 위해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주민들은 ‘플랫폼 오스터볼드’라는 비공식 온라인 커뮤니티 공간도 만들었다. 대부분의 주민이 경작 경험이 없어서 도시농업 관련 생산 및 소비 정보를 얻고 싶었기 때문이다. 정기적으로 오프라인 회의도 갖는다. 2021년 ‘플랫폼 오스터볼드’는 도시농업에 대한 지식 교환을 위하여 다양한 주제별 워킹그룹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 플랫폼은 토론이나 행동이 필요한 이슈를 식별하거나 주민들이 제기하는 이슈를 파악하고 회의의 의제로 설정하는 역할도 한다.
오스터볼드는 아직 개발 초기 단계라서 여러 문제가 있다. 도시농업의 주목적이 식량 자급이냐 공동체 활성화냐 하는 논쟁도 이어지고 있다. 일부 전문 경작자들은 누가 어떤 농작물을 얼마나 많이 재배하고 있는지 알려주는 앱의 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불가피한 사유로 작물을 경작할 수 없을 경우 외부의 전문 경작자에게 맡길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시가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주민 요구를 반영해 규칙을 바꾸고 웹사이트나 앱을 개발해주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오스터볼드의 도시농업 사례는 택지·농지 이분법적 사고에 대한 하나의 대안이다. 택지 아니면 농지가 아니라 택지이면서 동시에 농지일 수 있다는 인식 전환의 결과다. 같은 논리로 도시이면서 농촌일 수 있고 시민이면서 농민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혁명적인 인식 전환이 있어야만 기후위기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시급하게 필요한 지속가능한 먹거리체계가 구축될 수 있을 것이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이 신작 「오늘날 혁명은 왜 불가능한가」에서 말했듯이, 공유와 공동체조차 상품화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혁명은 종말을 맞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네덜란드 알메러 시의 오스터볼드에서는 도시농업을 통하여, 도시와 농촌을 구분하고, 시민과 농민을 가르고, 택지와 농지를 구별하는 고정관념을 깨는 혁명의 바람이 불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공유와 공동체의 가치가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혁명의 바람이.
참고문헌
Jansma JE and Wertheim-Heck SCO, 2022, “Feeding the city: A social practice perspective on planning for agriculture in peri-urban Oosterwold, Almere, the Netherlands,” Land Use Policy 117.
Jansma JE and Wertheim-Heck SCO, 2024, “A city of gardeners: What happens when policy, planning, and populace co-create the food production of a novel peri-urban area?” Urban Analytics and City Science, Vol. 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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