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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

[흙에서 나다 2] 들녘엔 갑(甲)이 살지만 숲엔 정령이 산다

아메바! 2024. 7. 8. 17:33

들녘엔 갑(甲)이 살지만 숲엔 정령이 산다

안철환(전통농업연구소 대표)

 

 

한 동안 귀농하려는 분들께 가급적 들녘보다는 숲으로 귀농하시라 했습니다. 왜냐고 물으면 농반진반으로 했던 말이지요.

인류 역사상 인간들이 꿈꾸던 유토피아는 거의 숲에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어요. 들녘의 숲이 아니라 야트막한 동산 속 숲 말이죠. 에덴동산이 그렇고 무릉도원, 샹그리라가 그렇습니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수필가로 유명한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Walden, or Life in the Woods)이란 책에서 저자가 그리는 곳도 숲 속이고, 하다못해 웰컴투 동막골이란 영화에서 그리는 이상향 마을도 산 숲속에 있었습니다.

 

유토피아까지는 아니라도 속세를 떠나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공간들 또한 거의 들녘보다는 숲 속 전원이었습니다. 조선 시대 낙향한 유학자가 쓴 대표적인 농사 책 “산림경제(山林經濟)”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책 제목에서 그리는 곳도 들녘이 아닌 숲이었습니다. 요즘 인기있는 TV 프로그램으로 “나는 자연인이다”도 대부분 산의 숲속으로 들어간 사람의 얘기인 것을 보면 숲 속의 삶은 인류 모두의 로망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마도 인류의 조상이 숲 속에서 살다 내려와 원초적 고향인 숲으로 돌아가고픈 지향이 유전자에 새겨져 있어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추상적인 얘기보다는 숲에는 흙이 살아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럼 왜 숲엔 흙이 살아있다는 걸까요? 그럼 숲이 아닌 곳의 흙은 살아있지 않다는 걸까요?

 

저는 살아있는 흙과 비옥한 흙을 구별하고자 합니다. 아마 비옥한 흙으로 치자면 당연히 들녘의 흙일겁니다. 특히 삼각주(델타)의 흙 곧 충적토가 그렇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나일강 삼각주, 유프라테스, 티그리스 강의 메소포타미아 유역, 인더스 강 유역, 황하 화북지방의 토양이 대표적이죠. 이른바 4대강 문명 발원지입니다. 그 외에도 인도차아나 반도의 메콩강, 미 서부평원의 미시시피강, 남미의 젓줄 아마존강이 대표적입니다. 이런 거대 문명을 일군 강 주변의 충적토양은 강 상류지역의 숲에서 영양물질들이 흘러내려와 강의 범람으로 생긴 땅들입니다. 그러니까 강 주변 비옥한 흙도 따지고 보면 숲 속 상류에서 흘러온 것입니다.

 

그럼 무슨 근거로 숲 속의 흙은 살아있고 강 주변 들녘의 흙은 그렇지 않다는 걸까요?

 

흙이 살아있으려면 하늘과 소통해야 합니다. 하늘과 소통하는 핵심은 앞 글에서 말한 바람이고 그로 인해 물과 불이 소통을 합니다. 바람이 세게 불면 물과 불은 소통하지 않고 싸우기만 합니다. 태풍이 불어 물이 불을 이기면 수재가 나고 건조한 바람이 불어 불이 물을 이기면 화재가 납니다. 그러나 흙을 기반으로 하면 물과 불은 소통합니다. 물과 불이 소통한다고 하니 그 말도 좀 추상적으로 들립니다.

 

살아있는 흙의 구조를 살펴보면 바위에서 부서져 나온 흙 알갱이 고상(固相)이 반을 구성하고 그 중 반의 반을 물이 액상(液相)을 이루며 또 그 만큼의 공기가 기상(氣相)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 외에 5% 이하로 아주 일부인 유기물이 존재합니다. 이런 흙을 떼알의 흙이라고 하고 입단화된 흙이라고도 합니다. 떼알이란 낱알(홑알)의 흙들이 뭉글뭉글 뭉쳐진 흙으로 특징은 틈새(공극)가 많다는 겁니다. 이 틈새가 살아있는 흙의 본 모습이고 이 틈새를 유지해 주는 게 흙 알갱이 표면에 코팅되어 있는 유기물입니다. 여기서 액상은 물이고 기상은 하늘에서 바람이 흙에 스며든 따뜻한 불입니다. 그리고 이 물과 불이 흙에서 만나 소통한 결과가 바로 유기물입니다. 그런데 이런 흙이 숲에만 있는 건 아니죠. 숲이든 들녘이든 농경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생명수의 기원

그러나 숲에는 남다른 게 있습니다. 바로 남다른 물과 불, 물과 바람, 물과 공기입니다. 우선 물을 살펴보겠습니다. 숲의 물은 어떨까요? 금방 눈치채셨겠지만 깨끗하죠. 왜 깨끗할까요? 그것은 산의 흙과 나무와 풀들이 뱉어낸 물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물이 깨끗한 것은 각종 미네랄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지하 암반수가 깨끗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깨끗한 지하수는 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위험한 경우가 많지요. 지하수엔 중금속이 많기 때문입니다. 무겁기 때문이죠. 화강암이 많은 우리나라 지하수엔 철분이 많고 우라늄도 적지 않습니다. 겉으론 맑고 깨끗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지하수 말고 맑고 깨끗한 물로 증류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시겠지만 이런 물들은 겉만 깨끗하지 실제로는 위험한 물입니다.

 

반면 미네랄이 풍부한 물이야말로 살아있고 그래서 진짜로 깨끗한 물입니다. 이런 물이 생명을 살리고 기르기 때문입니다. 물은 하늘의 비로 시작되기 때문에 물 또한 하늘과 땅의 소통의 산물입니다. 그 하늘의 물이 제일 먼저 내려 모이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설산입니다. 만년설이죠. 굳이 설산이 아니라도 하늘의 물은 산으로 내려와 생명수로 재탄생합니다. 산에는 바로 흙이 있고 나무가 있기 때문이죠.

 

그 생명수가 산에서 내려오다 용출하는 곳에 에덴동산이 있고 무릉도원이 있고 샹그리라 동막골이 있습니다. 아마 페루의 마추픽추도 그런 곳일 겁니다. 우리의 전통 마을도 그 생명수가 용출하는 곳에 만들어집니다. 다만 다른 점은 산 속은 아니고 산 밑이죠. 들녘과 숲의 경계에 위치합니다. 마을을 동네라 했죠. 동은 한자로 동(洞)입니다. 골짜기죠. 동네는 같은 물을 먹는 사람들인셈입니다. 앞에서 말한 4대강 문명도 다 이런 설산이나 골이 깊은 산에서 기원했습니다. 그러나 국가권력이라는 거대 문명은 강에서 발원했을지는 몰라도 인류의 근본 문명은 산에서 시작했다고 봅니다. 종자학자로 유명한 바빌로프는 강이 아닌 계곡과 산악지대에서 생물학적, 문화적 다양성의 기원을 찾았습니다. (게피 폴 나브한 지음, 강경이 옮김 "세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 참조)

 

우리 민족의 고향이라는 백두산도 이름을 보면 원래 설산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머리가 하얀 산, 바로 백두(白頭)산, 설산이란 뜻입니다. 백두산과 같은 산이 알프스의 몸블랑입니다. (Mont)은 프랑스 말로 ""이고, 블랑(Blanc)"하얀 색"이라는 뜻이니 바로 백두산인 것이죠. 화산이 터져 천지가 만들어졌지만 물의 기원은 변함이 없지요.

 

반면 4대강 유역은 비옥합니다. 산에서 물만 발원한 게 아니라 물이 각종 영양물질을 실어오기 때문입니다. 물과 영양이 풍부해 농사가 아주 잘 됩니다. 그렇지만 사람이 먹는 물로 볼 때는 깨끗한 물은 아닙니다. 강물은 농업용수로는 훌륭하나 식용수로는 적당지 않아 사람은 산의 골짜기 물을 직접 받아 먹어야 합니다. 골짜기 물이 있는 산으로 들어가던가, 그 물이 용출되는 곳, 산 밑을 찾아 우물을 파 먹든가 해야 합니다. 그곳과 멀리 떨어진 들녘에서 그 물을 먹으려면 수로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수로로 유명한 게 바로 로마의 수도교지요.

 

예로부터 치수정책의 핵심은 농업용수와 식용수 확보에 달려있었습니다. 비옥한 강 유역에서 발달한 거대 문명은 로마처럼 식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수도교를 설치해서 먼 산의 골짜기에 빨대를 꽂아 빨아 먹었습니다. 독점한 것이죠.

 

중국에선 제방을 쌓아 큰 강을 다스리고 운하를 파서 지천들을 연결해 마을 곳곳에 물을 공급했습니다. 그 일에 성공해 중국 최초의 왕조를 세운 사람이 바로 우(禹)왕입니다. 수시로 범람하는 황하의 본류를 다스리려면 제방 쌓아 막아서만 될 게 아니라 강의 지류들을 소통시켜 강물을 흐르게 함으로써 범람을 근본적으로 막는 전략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지류를 다스려 본류까지 다스렸다는 것은 농업용수와 식용수 확보 둘 다에 성공했다는 뜻입니다. 지류를 통하게 해서 식용수 확보도 원활해졌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임원경제지라는 백과사전을 집필한 조선 후기 유학자 서유구는 우왕보다 더 근본을 파악한 사람입니다. 본류보다 지류의 치수를 강조한 우왕의 정책을 겨우 홍수만 억제한 것으로 보고 더 근본은 밭 도랑과 밭 주변 물길 다스리는 일이라 했지요. 강의 본류가 대동맥이라면 밭 도랑은 모세혈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밭 도랑을 잘 다스리면 밭 사이에 물을 고르게 대어 흙과 물이 잘 섞이면 구름과 안개가 일어나 비가 내리고 가뭄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고 물을 잘 저장하면 홍수도 예방할 수 있다고 했어요. 그래서 세상 모든 사람에게 밭을 일구게 하는 것은 그 사람들 모두 다 하천을 관리하게 하는 것과 같다 했으니 치수의 근본이 무엇인지 깨우쳐 주었다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한 모세혈관 같은 밭 도랑과 물길이 바로 강, 하천 발원지라 할 산 중턱 숲인 것입니다.

 

보통 땅심(지력)이라 하면 거름 또는 유기물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서유구 선생은 거름보다 중요한 게 있으니 바로 물이라 했습니다. 아무리 땅 속에 거름이 많다 해도 물이 없으면 전혀 쓸모가 없어요. 그래서 비옥한 흙이 아니라 살아있는 흙의 관건은 바로 물에 달려 있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