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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

[흙에서 나다 3] 물보다 공기

아메바! 2024. 8. 13. 15:16

흙에서 나다 3 - 들녘엔 갑(甲)이 살지만 숲엔 정령이 산다

안철환 (전통농업연구소 대표)

 

물보다 공기

물 다음으로 숲 속의 흙을 살아있게 하는 건 공기와 바람입니다. 제가 앞 글에서 물의 중요성을 많이 강조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글에선 물보다 공기가 더 중요함을 말하려 합니다. 살아있는 흙에는 살아있는 물이 있어야 한다는 거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살아있는 공기입니다.

 

도시텃밭에 가보면 물 주기를 열심히 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채소 잎사귀에 물 주는 소리가 참으로 좋다고 합니다. 농부는 논두렁에 물 들어가는 소리와 자식 입에 밥들어가는 소리가 제일 듣기 좋다는 말과 상통합니다. 저도 모종 키우다보면 참 물 주는 소리가 좋습니다. 이파리에 물 닿는 차르르 차르르 소리가 마치 즐겁게 채소가 먹는 것 같지요.

 

그렇지만 물 좋아하길 너무 좋아하면 농사 망치기 십상이에요. 집의 화초도 마찬가지로 초보자의 제일 큰 악덕(미덕의 반대)은 물 많이 줘 물 배 터지게 하는 거잖아요. 물 많이 주면 땅 속에 공기가 부족해져 숨막혀 죽거나 과습 피해로 병들어 죽기 아주 쉽죠. 대개 밭의 경우 만병의 근원은 과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과습 상태의 밭을 보면 흙 표면에 이끼가 낀 것처럼 녹색끼가 살짝 돕니다. 공기가 부족해 숨이 막힌다고 흙이 호소하는 모습입니다.

 

흙에 물 대신 공기를 넣어주는 행위는 뭘까요? 바로 호미질입니다. 호미질은 단지 제초에만 목적이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호미질은 풀만 제거하지 않습니다. 풀 없는 곳도 호미질 해주어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풀이 없는 건 아니에요. 그렇게 풀 있는 곳 없곳 작물만 빼고 다 긁어줍니다. 그리고 작물에게 북을 주지요. 그러면 제초 외에도 공기를 넣어주는 효과와 흙 속의 습기가 날아가는 길을 끊어주어 간접적으로 물을 공급해주는 효과, 북주기를 통해 작물에게 양분을 몰아주는 효과까지 있어요. 그래서 풀을 뽑는다고 하지 않고 매준다고 합니다.

 

그건 그렇다 치고, 그럼 왜 숲의 공기가 들녘 공기보다 더 살아있는 걸까요? 그 또한 답은 간단합니다. 숲의 공기는 나무들이 뱉어 낸 것이기 때문이지요. 나무야말로 살아있는 공기 정화기에요. 대기 중 탄소를 흡수해 광합성을 하고 그것의 결과로 산소를 잎으로 배출하죠. 뿌리에서 흡수한 물까지 배출하니 적당한 습기를 머금은 아주 쾌적한 공기를 내뿜습니다. 뿐입니까? 피톤치드라는 방어물질까지 함께 배출하니 나무가 뱉어내는 공기야말로 생명의 공기인 겁니다.

 

원래 들녘의 논에도 나무가 있었어요. 버드나무와 미류나무가 많았지요. 논을 바둑판처럼 개간하면서 이 나무들이 다 사라지고 논의 경관은 벼만 남고 말았어요. 이 나무들이 논을 둘러싼 대기(미기후)를 건강하게 해 주었는데 햇빛을 가린다는 이유로 없애버린 겁니다.

 

나무에 관한 재밌는 시가 있어 소개해볼까 합니다. 다들 잘 아시는 윤동주 시인의 시입니다.

나무

나무가 춤을 주면
바람이 불고

나무가 잠잠하면
바람도 자오

 

바람이 불어야 나무가 춤을 추는 게 상식일텐데 거꾸로 얘기를 하고 있어요. 일제 강점기 저항시인의 시이기 때문에 아마 나무(민족)의 주체성을 말한다고 해석하는 게 자연스러울 겁니다. 근데 저는 말 그대로 해석합니다. 나무가 춤을 춘다는 건 공기와 물을 잎사귀로 내뿜는 모습이라고 보는 거지요.

 

한 여름 느티나무 밑 그늘에 가 본 사람은 알 겁니다. 자연 에어콘 바람이 얼마나 시원한지요. 나무가 춤을 추니 바람이 부는 시 그대로의 현장입니다. 이런 바람은 생명을 살리는 바람입니다. 이런 생명의 바람이 풍부한 곳이 바로 숲이지요.

그렇지만 우거진 숲이 최고는 아닙니다. 숲 속 야트마한 동산 밭이거나, 숲과 들녘이 만나는 경계선, 곧 산 밑 밭이지요. 에덴동산에서 흙으로 인간을 빚고는 숨을 불어넣은 바로 그 바람이 부는 곳입니다.

 

신의 숨, 바람

옛 사람들은 바람을 신이 숨쉬는 것이라 했습니다. 신이 화나면 무서운 숨을 쉽니다. 태풍 같이 습한 바람이거나 건조한 바람을 일으켜 때로는 물 난리, 때로는 불 난리를 가져다 주지요.

 

신은 성난 바람만 불지는 않아요. 곡식의 싹을 틔우고 곡식의 성장을 돕고 이삭을 영글게 해주며 마침내 긴 긴 겨울 생명을 이어주는 식량으로 남게 해 주지요. 그래서 바람을 불어오는 곳에 따라 크게 동서남북에 맞춰 네 종류로 나누었습니다.

 

동쪽에서 불어오는 동풍은 해가 뜰 때 부는 바람이라 해서 날 새우는 바람, 곧 샛바람이라 했지요. 날을 새워 동(東)이 트는 바람이니 동풍이고 봄 바람이기도 합니다. 곡식의 싹을 틔워주는 바람이기도 하지요. 서쪽에서 부는 서풍은 하늬바람이라 해서 건조하고 서늘한 바람으로 곡식을 익게 해주는 가을 바람입니다. 남쪽에서 부는 남풍은 마파람이라 하는데 맞바람에서 왔답니다. 맞은편 남쪽에서 불고 주로 여름 장마철에 불어오므로 곡식을 무럭무럭 자라게 해 줍니다. 북쪽에서 부는 북풍은 된바람이라 해서 몹시 춥고 세게 부는 뱌람이죠. 힘든 일을 하고 나면 ‘몸이 되다’는 말과 상통해 보입니다. 추우니 곡식은 곳간에서 휴면에 들어가 사람에게 소중한 식량이 되어주겠지요.

 

이 중 샛바람이 백두대간을 넘어오면 높새바람이라 해서 고온건조한 바람이 됩니다. 푄 현상이라고 들어보셨을 겁니다. 바다에서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내륙으로 불다 큰 산을 만나면 해안쪽은 비를 내려주지만 산을 넘으면 습기는 말라 건조한 바람이 되어 내륙 쪽에 가뭄을 일으키고 심하면 산불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강원도나 경북도 동해안 쪽에선 샛바람이라 하지만 산넘은 내륙쪽에선 높새바람이라 부릅니다. 늦봄에서 초여름, 절기로는 하지 전에 찾아오는 가뭄을 일으키는 바람이 되지요.

 

그렇지만 우리가 평상시에 느끼는 보통의 바람은 산에서 내려오는 바람과 산으로 올라가는 바람입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바람은 나무가 뱉어내는 공기와 계곡의 물이 뱉어내는 공기입니다. 그래서 순하고 깨끗하고 농사에 아주 좋은 바람이지요.

반면 산으로 올라가는 바람은 바다 또는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인데 이 바람은 세고 들녘의 온갖 것들을 쓸고 오기에 그리 좋은 바람은 아니에요.

 

김광석이라는 유명한 가수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 노래말에도 이런 차이가 묘사되고 있어 재밌게 되새겨 보게 되더라구요.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 중략 .....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출렁이는 파도에 흔들려도 수평선을 바라보며

 

나무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그대의 머리결처럼 부드럽지만,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파도가 출렁거려 흔들린다 하잖아요.

그래서 숲에서 부는 바람은 생명의 바람이라는 거지요.

 

이러한 바람은 흙 속으로 들어가 생명의 공기(기상)가 됩니다. 그렇지만 바람이 직접 흙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에요. 오히려 반대로 흙이 스펀지처럼 대기 중 공기를 빨아들인다고 해야 맞을 겁니다.

 

흙 속에서 공기를 빨아들이는 것은 유기물,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호기성 미생물입니다. 호기성 미생물들은 유기물을 분해하면서 공기를 만들어냅니다. 기본적으로 호기성 미생물들은 공기 중에도 흙 속의 산소를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흙 속에 산소가 잘 들어가도록 조건을 만들어주어야 하지요.

 

그 조건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은 풍부한 유기물의 존재입니다. 유기물을 단순히 거름이나 비료라고만 이해하면 곤란해요. 유기물의 핵심은 탄소질입니다. 유기물을 정의하기를 탄소화합물이라 하지 않습니까. 유기물의 뼈대라고 이해해도 돼요. 그 뼈에 살처럼 붙는 것이 질소질 재료인데 똥이 대표적이죠. 보통은 거름이나 비료를 똥 중심의 질소질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유기질비료를 말하면 대개 계분, 돈분, 우분 등 축분으로 이해하는 게 그것입니다. 근데 그것은 살이지 뼈가 아니에요.

 

질소질은 작물을 빠르게 잘 키울 수는 있어도 흙을 살리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먼저 흙에 뼈 역할을 하는 탄소질 재료를 잘 넣어주어야 합니다. 그럼 어떤 게 탄소질 재료일까요? 톱밥이나 숯가루, 재 같은 재료입니다. 이른바 목질부 재료이지요. 이 중에 리그닌이라는 탄소질 재료가 핵심인데 이유는 앞에서 말한 호기성미생물이 아주 좋아하는 유기물이기 때문이에요. 이 리그닌을 미생물이 먹고 분해하면 접착제를 만들고 이 접착제는 흙 알갱이들을 몽글몽글하게 뭉쳐줍니다. 홑알의 흙 알갱이를 떼알로 만들어주는 거죠. 떼알의 흙에는 틈새가 많습니다. 그 틈새로 공기가 들어오는 거죠. 물론 물도 들어옵니다.

 

이 틈에 물이 공기보다 많이 들어오면 혐기상태가 많아져 호기성미생물들이 떠납니다. 그 자리에 곰팡이나 병원성 세균이 들어오지요. 그리고 흙은 병이 드는 겁니다. 물론 공기가 더 많으면 흙은 가뭅니다. 흙에 물이 모자라면 흙 속에 있는 영양분을 작물이 제대로 먹질 못합니다.

 

숲 속의 흙에는 이런 탄소질 재료가 많습니다. 나무 잔가지에서부터 낙엽까지 수도 없지요. 반면 들녘엔 숲이 적어 탄소질 재료는 적고 질소질 재료는 많습니다. 아무래도 인구도 많아 인분도 많고 목축도 많이 해 축분도 많지요. 그래서 당장은 들녘의 땅에서 농사가 잘 됩니다. 탄소질 재료는 비에 의해 숲에서 떠 내려 오지요, 질소질 재료는 많은 사람의 인분, 많은 가축의 축분까지 해서 매년 풍년이 끊이질 않습니다.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가면 들녘의 땅엔 염류집적, 연작피해를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기후위기에 아주 위험한 구조를 축적해갑니다. 토양의 생산력은 한계에 다다르고 기후위기로 농사가 되지 않으니 식량위기가 극에 다다릅니다.

 

토양에 질소질이 많지 않은 숲의 땅에선 풍년이 흔하질 않습니다. 그렇지만 흉년도 많지 않습니다. 기후위기가 와도 피해 갈 구멍이 있습니다. 흙도 잘 견뎌 작물 피해도 덜하지만, 야생의 먹거리가 풍부하기 때문입니다. 야생의 식물들은 작물보다 기후위기에 아주 강하지요. 힘이 세서가 아니라 적응을 잘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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