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에서 나서, 흙에서 살다, 흙으로 돌아가는 삶
안철환(전통농업연구소 대표)
머리말
24절기 책으로 하늘 얘기를 하고 먹거리 책으로 생명 얘기를 하고 나서 마지막으로 흙 얘길 하고 싶었지만 자신은 없었습니다. 토양학에는 학문적인 영역이 많았기에 짧은 지식과 일천한 경험으로는 어림도 없었지요. 그런데 욕심을 버리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무모한 도전을 감행하기로 해서 이 글을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학문적으로 완성도는 떨어질 겁니다. 그래서 그 길은 진작 포기했습니다. 다만 학문적으로는 못하는 얘길 하기로 했습니다. 또한 경험만으로도 채우기 힘든 얘길 도전해보기로 했지요.
농사에서 흙은 근본이지요. 그렇지만 흙은 농사에서만 의미있는 것은 아닐 겁니다. 그 이상의 의미가 당연 흙에는 담겨있습니다. 농사의 의미로 바라보는 토양학 이상의 얘길 하고자 하는 이유입니다. 그렇다고 지질학을 말하고자 하는 것도 아닙니다. 농사 이상의 생명의 관점에서 얘길 풀어보고자 합니다. 제목을 위와 같이 잡은 의미가 거기에 있습니다. 말하자면 생명의 근원을 따져보고자 함이죠. 왜 생명은 태어났고 그 생명은 왜 흙에서 태어났는지 그리고 생명의 미래는 무엇일지, 그걸 흙 얘기에서 풀어보고자 합니다.
흙에서 나다
하나님은 왜 인간을 흙으로 만드셨을까요? 더럽고 비만 오면 허물어질 흙으로 말이죠. 만약에 금으로 만드셨다면 평생 가난하지 않게 살 수 있고 대리석으로 만드셨다면 얼마나 멋진 모델처럼 살 수 있겠습니까? 참 이상하죠?
그렇지만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가 있을 겁니다. 금과 대리석에는 생명이 깃들어지지 않잖아요. 반면 흙에는 무궁무진한 생명들이 깃들어 있습니다. 우주의 별만큼이나 있는 미생물이 그것이고요, 그 것 말고도 지렁이를 비롯 작은 벌레와 두더쥐 같은 작은 동물이 흙에 의지해 살고 있습니다. 우리 몸에도 세포 수보다 더 많은 미생물이 살고 있고 나쁜 놈이긴 하지만 옛날엔 대장에 회충 같은 작은 동물도 살고 있었죠. 어쩌면 흙과 우리 몸은 비슷한 점이 의외로 많습니다. 우리 몸에 없어선 안되는 피도 흙에서 왔답니다. 바로 철이죠. 피의 주성분인 헤모글로빈이 철로 되어 있잖아요. 빨간 피의 색은 바로 산화된 철의 색깔이죠. 철은 지구 어디에나 고르게 있답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사람을 흙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은 흙에서 싹이 나는 걸 보고 떠올렸을 거라 추측해봅니다. 봄만 되면 길고 추운 겨울 동안 죽어 있던 생명들이 흙 틈을 비집고 올라오죠. 옛날 사람들에겐 아주 신기한 일이었을 겁니다. 사실 저도 우연히 심은 배추씨가 3일 만에 땅 속을 비집고 올라와 싹을 틔우는 걸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 그에 미쳐 농사를 짓게 되었어요.
씨가 싹이 트는 건 저에게 더 이상 과학이 아니라 생명의 부활이었습니다. 속으로 그랬지요.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싹이 흙에서 올라오는 걸 본 최초의 인간도 저처럼 생각했을 겁니다. 과학을 전혀 몰랐으니 더 신기했을 겁니다. 어쩌면 과학을 몰랐기에 저보다 더 신기한 눈빛으로 그 현상을 진지하게 받아들였을지 모릅니다.
사실 기독교만이 아니라 인류의 초기 종교나 신화나 전설에선 흙과 대지를 생명의 어머니로 여긴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흙으로 인간을 빚고선 하나님은 생명의 숨을 불어 넣어주었습니다. 저는 그 숨을 씨앗으로 해석하지요. 흙에다 씨앗을 심은 겁니다. 그리고 봄에 싹이 올라오듯 인간(생명)이 움터 올라온 거지요. 씨앗은 동양의 오행론에 따르면 목(木)에 해당하는 것이고 하느님의 숨도 바람을 뜻하는 것으로 마찬가지로 목(木)에 해당합니다.
그럼 흙이 어떻기에 수많은 생명을 품고 낳을 수 있을까요? 저는 흙 속에 물이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사막의 흙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물이 없어서입니다. 그렇지만 물이 있다고 해서 저절로 생명이 탄생하지 않습니다. 하늘의 작용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하늘의 작용은 불입니다. 그렇습니다. 물과 불이 만나야 생명이 나옵니다. 어떻게 만날까요? 바로 바람입니다. 하느님의 숨이죠.
물은 아래로 향하고 불은 위로 향하려 하죠. 그러면 만날 수가 없습니다. 바람은 하늘로 하여금 불의 기운을 아래로 향하게 합니다. 그리고 땅 속의 물을 위로 끌어올리는 작용도 합니다. 과학으로 말하면 베르누이 법칙, 유체역학입니다. 나이 드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옛날엔 모기약을 입으로 불었어요. 티(T)자처럼 생긴 빨대를 모기약이 든 병에다 꽂아 한쪽에서 훅~ 하고 불면 압력의 차가 생겨 병 속의 모기약이 위로 빨려지고 반대쪽 빨대 구멍으로 분사되어 나아가죠. 세게 불려고 큰 숨을 들이마시다간 모기약이 내 입으로 쳐 들어오는 낭패를 겪기도 했습니다.
하늘에서 땅으로 부는 바람은 땅 속으로도 들어갑니다. 태풍처럼 센 바람은 흙을 날려 버리지만 봄바람처럼 살살 부는 바람은 땅 속으로도 스며 들어 숨길을 만들고 그길 따라 물길도 만듭니다. 그 물길 따라 드디어 땅 속에서 올라온 물은 바람 따라 내려온 하늘의 불과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물과 불이 만날 때는 회오리처럼 만납니다. 그 형상을 표현한 게 태극 마크입니다. 빨간 것은 불이고 파란 것은 물입니다. 물고기처럼 머리와 꼬리가 있어 불의 머리는 땅을 향하고 물의 머리는 하늘을 향하고 있죠. 그렇게 서로 기운을 받아 불의 머리는 싹을 만들어 내 다시 하늘로 향하고 물의 꼬리는 뿌리를 만들어내 다시 땅으로 향합니다.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물론 싹을 올리고 뿌리를 내리는 것은 식물이겠지요. 사람이 어떻게 식물처럼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못 움직이는 것이 식물의 본질이 아니라 늘 하늘과 땅과 소통하는 것이 식물의 본질이라고 저는 봅니다. 그러면 인간도 식물처럼 살 수 있습니다. 늘 머리는 하늘과 소통하고 발은 늘 땅과 소통하는 삶 말이죠.
이것이 저는 하느님이 인간을 흙으로 만든 이유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하늘의 기운을 넣어 흙으로 빚었으니 하늘과 소통하고 흙과 소통하며 살라는 것이죠.
그럼 다음 글에선 어떤 지역과 공간에 있는 흙이 좋을지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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