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행론으로 보는 땅과 흙 이야기
안철환 (전통농업연구소 대표)
토양학을 어깨 넘어로 공부해보니 대부분 서양의 학문이라는 걸 알고 은근히 아쉬웠어요. 서양의 지질학, 미생물학, 화학, 생물학 등에 기반한 것이죠. 동양의 토양학, 아니 우리의 토양학을 찾고 싶었지만 언감생심이었죠. 풍월을 읊는 3년 넘은 서당개 수준도 못 되어 본격적인 논지는 풀지 못하고 몇 가지 문제제기와 시사 정도에서 그치는 게 이번 글이 될겁니다.
일단 간단하게 짚고 싶은 문제제기는, 서양에서 들어온 기존 토양학엔 미시적인 과학 얘긴 탁월하지만 거시적인 얘긴 부족해 보인다는 겁니다. 그 중 흙 얘기하는데 하늘 얘기가 없고 사람 얘기가 없다는 겁니다. 이게 아마도 서양의 학문은 나누는 데 기반한 곧 분류학에 기반한 한계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통합과 연계학이 빠진 거죠. 그런 얘길 이번 글에서 조금 얘길 해볼까 합니다.
오행론으로 본 땅 이야기
오행론(목, 화 토, 금, 수)은 하늘을 5가지로 나눈 얘기애요. 하늘의 주인공은 태양이죠. 동(木) 서(金) 남(火) 북(水)을 가르는 태양의 운행에 맞춘 것입니다. 중앙에 바로 흙(土)이 있고 그 위에 사람이 있는 꼴입니다. 나(사람) 있는 곳이 중심(土)이고 그 중심으로 네 개의 하늘이 펼쳐져 있고 그 하늘에 따라 대지도 네 개로 나눠지는 것입니다.
전형적인 예가 4 대문으로 둘러싼 서울입니다. 동대문은 해가 뜨는 동쪽에 있어 오행의 목에 해당하고 그것은 씨앗의 발아 기운이고 파종의 힘입니다. 그래서 동대문의 다른 이름인 흥인지문(興仁之門)의 인(仁)이 바로 씨앗을 뜻하는 것입니다. 과일의 씨를 행인(杏仁)이라 하잖아요. 인(仁)이란 글자는 아이를 밴 임신부의 모습을 상형한 것으로 씨앗이라 하기에 적당하죠. 그래서 인은 씨앗, 파종 등을 뜻하고 큰 의미로는 사랑(love)에 해당하기에 널리 사랑의 기운을 흥하게 하는 문, 또는 그런 대지의 입구라는 뜻이 되는 겁니다.
이런 기운이 흥한 땅은 바로 동향이거나 동남향의 땅입니다. 제가 처음 농사지은 땅이 바로 동남향이었습니다. 위치가 그러하다보니 일출 장면이 장관이었습니다. 일주일이 멀다하고 동트기 전 밭에 해뜨는 걸 보려고 달려갔지요. 새 해 보러 동해안으로 가는 건 의미없는 일이라는 걸 바로 알았어요. 밭에서 일출이 장관인 것은 해 자체보다도 해 뜨기 전부터 일출을 알려주는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 그에 맞춰 흙에서 꼼지락거리는 벌레와 풀들의 몸짓들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그런 아침의 기운이 강한 곳이 동향, 동남향의 땅이라는 거지요. 그런 땅은 아침과 오전, 계절로는 봄에 강하죠.
이런 곳의 해는 자외선이 강하고 오방색 중 파란색 부분이 강해 햇빛 파장이 짧습니다. 파장이 짧다보니 깊숙이 파고들진 못하고 잎사귀 표면에 영향을 많이 주어 줄기와 잎 생육에 좋습니다. 이런 곳에선 잎사귀 먹는 채소류와 나물류가 잘 됩니다. 봄부터 절로 올라오는 냉이에서부터 쑥까지 야생 나물류가 좋지요. 상추나 시금치 배추도 좋습니다. 제가 태어난 왕십리는 성동구에 있어 서울에서 보면 동쪽 땅입니다. 그래서인지 옛날 이곳은 4대문안 사람들 먹을 채소농사를 많이 했어요.
남대문은 해가 중천에 떠 있는 남쪽에 있어 오행으로는 화(火)에 해당합니다. 계절로는 뜨거운 더위의 여름에 해당합니다. 근데 이름이 왜 숭례문(崇禮門)일까요? 더운데 뜬금없이 예를 숭상할까요? 근데 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덥다고 아무 데서나 옷을 확확 제껴 던지면 곤란하잖아요. 더울수록 예를 갖춰야 한다는 거죠. 또 우리의 여름은 습하면서 더워 만물이 극 성장을 합니다. 이른바 몬순기후의 특징입니다. 건조하면서 더운 유럽이나 중동지방 같은 경우는 뜨겁기만 한 태양의 화 기운 때문에 다 죽지요. 모든 게 극성장하는 우리 여름은 농번기인 것과 달리 그 지역은 여름이 농한기입니다.
암튼 이렇게 모든 게 왕성하게 성장할 때에는 마찬가지로 예의 덕목이 필요합니다. 무조건 성장만 할 게 아니라 완급을 조절하며 성장하라는 거죠. 무조건 성장만 하면 웃자라기만 합니다. 내실을 다지면서 성장해야 하는데 그럴 때 예가 필요합니다.
이런 남향의 땅에선 열매나 이삭을 맺는 작물이 잘 됩니다. 고추나 오이 호박 같은 과채류나 벼나 옥수수 수수 조 기장 같은 곡식이 잘 되지요. 일조량이 풍부해 생육에도 좋지만 잘 자란 잎과 줄기의 광합성 활동으로 뿌리의 양분 축적이 활발해 그 힘으로 열매와 이삭을 많이 다는 거죠.
서대문은 독립문이 아니고, 돈의문(敦義門)이라고 있었어요. 경향신문 앞 정동사거리에 있었죠. 말 그대로 의(義)를 돈독히 하는 문입니다. 서쪽의 기운은 오행으로 금(金)에 해당합니다. 서쪽의 기운은 저녁의 기운이고 계절로는 가을의 기운입니다. 농사의 입장에선 수확의 시기입니다. 금(金)은 쇠라 차갑죠. 벼를 베어 거두는 낫의 기운입니다. 차가우면서도 햇살은 따갑습니다. 곡식을 바짝 말려 겨우 내 곳간에서 저장이 잘 되도록 합니다. 의(義) 글자는 양(羊)을 내 손(手)으로 죽여(戈) 신에게 바치는 모습을 상형한 것으로 양을 죽이든 벼를 수확하든 그 기운은 냉정해야 할 것입니다.
서향의 땅에선 과일이 잘 됩니다. 서향의 햇빛엔 붉은 빛과 원적외선이 많지요. 파장이 길어 과일이 잘 익습니다. 서향에선 아침 동트는 햇빛보다 노을이 멋있죠. 늙어서는 서향의 땅에서 사는 게 좋답니다. 아마 파장이 길고 따뜻한 붉은 기운이 차가워진 늙은 몸에 좋기 때문일거에요. 반면 젊을 때는 동향, 동남향의 왕성한 기운이 좋답니다. 역동적인 젊은 기운과 맞기 때문일 겁니다.
북쪽의 땅에는 추운 겨울의 북풍 기운이 강하기 때문에 그것을 이기려면 지혜가 필요하다 했습니다. 그래서 북대문엔 홍지문(弘智門)을 두었지요. 원래 북대문은 숙정문인데 나중에 별도로 홍지문을 세웠어요. 북향의 땅은 선호하질 않았어요. 아무래도 춥죠. 그렇다고 무조건 남향을 추구하진 않았습니다. 남향에 산이 가로막고 있고 북향 쪽이 열려 있는데 남향이 좋다고 해서 산을 향하진 않았어요. 말하자면 우리는 산을 등지고(배산背山) 살아야지 산을 마주하고 살진 않았다는 겁니다.
한번은 토종씨앗 수집하러 시골 구석을 돌다 북향을 하고 있는 집을 가 보았습니다. 남쪽에 산이 가로막고 있고 북쪽에 밭이 있으니 배산북향을 하고 있는 집이었죠. 그런데 재밌는 것은 뒤뜰이 좀 이상하다 싶게 넓었다는 겁니다. 주인장께 여쭤보니 뒤뜰이 남향을 하고 있어 그랬다는 거였어요. 원칙에 얽매이지 않는 지혜로움을 엿볼 수 있었지요. 북향의 땅엔 아무래도 산채나 약초가 잘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런 식물은 음지나 반음지를 좋아하니까요.
이런 사방 중심의 오행론 세계관은 특히 우리나라처럼 산악이 발달한 환경에 잘 맞았을 것 같습니다. 이런 환경에선 향에 따라 토양의 성격도 분명하게 드러나 그에 맞는 작물과 재배법이 발달했겠지요.
오행론으로 살펴본 흙 이야기
앞에선 오행론으로 땅의 공간을 나눠봤습니다. 이번엔 좀 더 미시적으로 들어가 토양 속에 들어간 오행론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선 흙 속엔 크게 네 가지 있는데 하나는 물이고 둘은 공기이고 셋은 흙 알갱이이고 넷은 유기물입니다. 여기에서 흙알갱이는 오행론의 토(土)이고 물은 수(水)라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어요. 그럼 나머지 목(木), 화(火), 금(金)은 어떻게 존재할까요? 일단 금은 조금만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바로 미네랄이라는 무기질 양분입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게 철(Fe)입니다. 철은 지구 어디에나 있는 보편적인 토양 금속입니다. 사람이 흙에서 났다고 할 때 가장 확실한 증거가 바로 철입니다. 사람 몸 속 피에는 바로 철로 된 헤모글로빈이 있기 때문이죠.
하늘의 화(火)는 햇빛과 그로 데워진 따뜻한 대기입니다. 따뜻한 대기가 흙 속에 들어가 공기층을 형성하죠. 빛은 어떨까요? 빛도 흙 속으로 들어갑니다, 물론 깊게는 못 들어가요. 표토에 닿죠. 별 영향이 없을 것 같지만 이 한 줌 빛이 광합성세균 같은 미생물에겐 아주 중요합니다. 이산화탄소를 먹고 산소를 내주거든요.
또한 햇빛은 토양 속 지열을 높여줍니다. 그래서 비닐 같은 것으로 무조건 흙을 덮어주는 건 신중해야 합니다. 많은 면적일 경우 불가피할 수 있지만 도시농부처럼 소농일 경우는 소탐대실할 우려가 있지요. 비닐 덮으면 지열은 올라가요. 그러나 햇빛은 차단되죠. 미생물이 산소를 만들기도 힘들고 대기의 산소가 토양 속으로 들어가기도 힘듭니다.
목(木)은 흙 속에서 올라오는 싹의 모습이에요. 토양학에선 흙의 구성으로 공기, 물, 흙알갱이 그리고 유기물만 얘길 해요. 흙 속만 얘길하는 거죠. 흙에 뿌리내리고 흙 위로 싹을 내미는 식물을 얘기 안 하면 반쪼가리 토양학이 되는 겁니다. 표토에 닿는 햇빛 얘길 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이지요.
목(木)을 얘기할 때 빠져서는 안 되는 게 바람입니다. 발아를 촉진해주는 바람은 생명의 바람이자 사랑의 바람입니다. 봄에 표토에서 살살 부는 봄 바람은 땅 속의 습기를 하늘로 끌어올립니다. 이게 씨앗의 뿌리 발육을 촉진하고 새싹과 새움의 발아를 자극하죠.
바람은 발아뿐만 아니라 작물의 생육도 촉진합니다. 작물을 심을 때 오와 열을 맞추는 것은 통풍이 잘되게 하기 위해서지요. 바람은 작물 성장에만 좋은 게 아닙니다. 토양 속 공기의 소통도 좋게 해주어 호기성 미생물 증진에도 좋습니다.
이렇게 오행론으로 토양을 보면 우리의 시야를 넓혀줍니다. 토양학은 토양 속만 보는 게 아니라 표토를 경계로 대기와 끊임없이 소통하는 열린 체계로 확대됩니다. 또한 오행론은 대지의 공간학(지리학)으로도 확장되니 비로소 토양학은 하늘과 사람과도 연결된 통합체계로 확장될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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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에서 나다 1] 흙에서 나서, 흙에서 살다, 흙으로 돌아가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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