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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

[이창우 컬럼] 도시농업의 신세계 오스터볼트

아메바! 2024. 12. 13. 13:17

도시농업의 신세계 오스터볼트

 

이창우 / 한국도시농업연구소장

 

지난 6월호 칼럼에서 네덜란드 알메러 시의 도시농업 특별지구 오스터볼드(앞으로는 한국어 어문규정 외래어표기법에 따라 오스터볼트로 적는다.)를 소개한 적이 있다. 농사를 지어야만 들어와 살 수 있는 도시지역 오스터볼트는 지구상 가장 독특한 사회적, 생태적 실험이 진행 중이다. 길 이름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레이첼 카슨 길, 임마누엘 칸트 길 같이 과학자, 철학자, 발명가의 이름을 땄다.

오스터볼트에 집을 짓기 위해서는 도로 건설, 수도와 전기 연결 등 모든 것을 주민이 직접 준비해야 한다. 게다가 대부분 농사일 경험이 없어 여러 어려움이 예상되는 데도 많은 사람들이 살려고 하는 이곳은 도시농업의 신세계다.

연구자, 시민, 지자체 공무원을 비롯한, 다양한 알메러 시 이해관계자들은 일찍이 도시농업으로 식량자급의 꿈을 실현하는 방법을 찾아 나섰다. 이들의 꿈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진보적인 정치가와 건축가는 자연주의 주택과 친환경 도시를 도시농업과 결합하여 현실화하는 데 앞장섰다. 모험을 즐기는 오스터볼트 주민들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개척정신으로 오스터볼트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글은 도시와 농촌을 통합한다는 꿈이 실현되고 있는 오스터볼트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과 오스터볼트 도시농업의 현재 모습을 살펴본다.

 

오스터볼트 만들기의 과정

오스터볼트가 속해 있는 알메러 시는 네덜란드 플레볼란트 주의 주도다. 원래 이 지역은 20세기 중반 농지 확대를 위해 바다를 매립하여 만들어졌다. 알메러 시는 1970년대에 암스테르담에서 증가하는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개발된 신도시다. 지난 10년간 알메러 시는 밀라노 도시 먹거리 정책 협약에 서명하고 국제 원예 박람회를 개최하는 등 농식품정책에 우선순위를 두어 왔다. 알메러 시는 소비 식량의 20%를 자체 생산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 목표의 달성 수단 중 하나는 오스터볼트라는 새로운 도시농업 특별지구를 만들어 10%를 담당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오스터볼트 구상은 2005년 네덜란드 최고의 농업대학인 바헤닝언(Wageningen) 대학교의 응용식물연구소에서 아흐로메러(Agromere)라는 연구 프로젝트로 시작되었다(Jansma and Visser, 2011). 아흐로메러는 농업과 알메러의 합성어다.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농업을 알메러의 도시생활에 통합하는 기회를 모색하는 동시에 알메러 시의회와 지역 이해관계자들이 도시개발계획에 도시농업을 포함하도록 영감을 주는 데 있었다.

2006년 새로운 시의회가 출범하면서 아흐로메러 프로젝트는 예상치 못한 응원군을 얻게 되었다. 1994년에서 2006년까지 노동당 소속 하원 의원을 지낸 아드리 다위버스테인(Adri Duivesteijn, 1950~2023)이 2006년 알메러의 공간계획·주택 담당 시의원이 된 것이다. 그때 그는 알메러를 비롯한 여러 도시를 테라스 하우스(길게 옆으로 다닥다닥 붙여 지은 주택)로 채운 주택조합과 부동산 개발업체에 전쟁을 선포했다. 도시와 농촌을 통합한다는 아이디어를 받아들인 다위버스테인의 시의회 연설은 시 공무원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09년에 초안이 나오고 2010년에 승인된, 알메러 전략 비전인 알메러 2.0에서 도시농업이 오스터볼트 지역 발전의 원동력으로 강조되었다(1983년 승인된 알메러 도시개발 기본계획이 알메러 1.0). MVRDV(건축·도시설계 회사. 창업한 건축가 3명의 이름 약자)가 중심이 되어 2010년 오스터볼트 기본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MVRDV 대표인 비니 마스(Winy Maas)는 우리나라와 인연이 많다. 그는 서울역 앞 고가도로를 공원화한 ‘서울로 7017’을 설계했다. 현재 부산시 명예자문건축가이기도 하다.

2012년부터 플레볼란트 주의 43㎢에 달하는 농경지에 오스터볼트가 점진적으로 조성되기 시작했다. 2013년 중앙정부와 플레볼란트 주가 오스터볼트 기본계획을 승인했다. 마침내 2016년 오스터볼트에 주민이 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다. 2023년 말 현재 1,800가구 4,000명이 이곳에 살고 있다.

 

오스터볼트 도시농업의 현주소

현재 오스터볼트의 도시농업은 10년 전 아드리 다위버스테인과 비니 마스가 상상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도 일부 보인다. 사실 오스터볼트 주민 대부분은 농사일이 서툰 아마추어 도시농부다. 그래서 최근에는 잘 가꾼 잔디밭을 도시농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오는가 하면, 대지내 농지를 경작하지 않아 잡초밭으로 방치하는 사람도 생기고 있다. 여러 이유로 자신이 직접 농사를 지을 수 없어 위탁경작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주민들은 이웃과 함께 일하는 데서 즐거움을 찾고 도시농업을 통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고 있다. 예를 들어 2020년 오스터볼트 도시농업 협동조합이 만들어졌다. 이 협동조합은 회원에게 다음과 같은 도움을 준다. ①씨앗, 작물, 퇴비 조달, ② 텃밭 규모에 적합한 농기구 이용, ③경작 지원과 조언, ④수확물의 수집, 가공, 판매. 이 도시농업 협동조합에서는 디지털 텃밭 일정계획표를 만들어 조합원이 어떤 채소를 얼마나 재배하고 싶은지 표시할 수 있게 했다.

오스터볼트에 농산물 직거래 장터가 생겼고, 직접 재배한 농작물을 서로 맞바꾸는 물물교환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기업형 농장도 생겼다. 괴테 길 옆에 있는 플리어벨던(Vliervelden) 유기농장은 작물 경작과 젖소 사육을 하면서 공공 기능도 갖춘 복합 도시농장이다. 매주 토요일 농장 마당에서는 오스터볼트 도시농부들도 참여하는 농부시장이 열려 유기농산물을 판매한다. 농장 상점과 푸드 카페는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문을 연다. 어린이집 2개소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이 도시농장은 교육, 돌봄, 연구 활동을 통해 시민들을 농사에 참여시키고, 건강한 먹거리와 의미 있는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포코(VoKo) 오스터볼트라는 온라인 유기농산물 판매점도 생겼다. 오스터볼트 주민이 운영하는 이 판매점에서는 도매상이나 이웃의 유기농 과일과 채소를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 매주 새로운 농산물 판매 목록이 온라인으로 제공된다. 수요일 오후가 되면 주문한 농산물이 농장에서 갓 수확한 채로 픽업 지점에 준비된다.

 

자연친화적 삶과 도시농업의 결합

자연친화적인 삶과 도시농업의 완전한 결합이 오스터볼트의 최종 목표다. 하지만 그 목표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좋은 일에는 흔히 방해되는 일이 많이 일어난다고 한다. 예를 들면 오스터볼트에 최근 맥도날드가 들어오려고 해서 주민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주민들은 타협안으로 오스터볼트에서 재배한 농산물을 식재료로 쓰는 유기농 비건 햄버그를 만들어 팔 것을 제안했지만 맥도날드 측에서 거부했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오스터볼트 주민들은 앞으로 닥칠 수많은 문제에 슬기롭게 대처해나갈 것이다.

오스터볼트에는 도시농업 장기종합계획이 없다. 지나치게 자유방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새로운 개념의 도시농업이 들어올 여지가 많다. 도시농업과 관련하여 무엇이 가능하고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오스터볼트 주민들의 상호작용과 기본적인 규정에 달려 있을 것이다.

오스터볼트 포털사이트에 41번째 블로그 릴레이로 올라온, 한 부부의 다음과 같은 게시글로 이번 칼럼의 마무리 글을 대신한다.

“오스터볼트에서 산다는 것은 도전 그 자체다. 가을과 겨울 비포장도로의 진흙, 알 수 없는 이유로 6주간 중단된 공사, 태양광 패널과 목재 가격의 상승, 이웃들과 의좋게 도로를 함께 포장할 수 있다고 믿은 환상…….

그래도 오스터볼트에서의 삶은 그 무엇보다 멋지다. 우리는 지구온난화를 막는 데 스스로 기여하게 돼 기쁘다. 이웃과 함께 어떤 단계를 겪고 있는지 확인하고,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 격려할 수 있다. 우리는 오스터볼트 들판에서 일어나는 엄청난 역동성, 길을 걸을 때 이웃들이 자신이 지은 집을 보여주며 드러내는 자부심, 그리고 그들 모두가 품고 있는 개척자 정신을 느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은 위대한 사회적, 생태적 실험장이다. 우리가 그 실험의 일부가 되어서 너무 행복하다.”

 

참고문헌

Jan Eelco Jansma, Sigrid C.O. Wertheim-Heck, 2021, “Thoughts for urban food: A social practice perspective on urban planning for agriculture in Almere, the Netherlands, Landscape and Urban Planning 206, pp1-13.

J.E. Jansma and A.J. Visser, 2011, “Agromere: Integrating urban agriculture in the development of the city of Almere, Urban Agriculture Magazine 25, pp28-31.

Bernard Hulsman, “De wildste wijk van Nederland(네덜란드에서 가장 야생적인 도시지역)”NRC, 2024. 10. 12.

Hannah Docter-Loeb, “An urban plot with a sustainable ending – Oosterwold residents must grow food on at least half their property leading to creative solutions,”The Guardian Weekly. 2024. 12. 6.

https://maakoosterwold.n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