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무에 대해선 저는 아직 초보입니다. 막연히 나무가 좋아 나무를 심기 시작한 지는 20년이 넘긴 했어요. 저희 농장에 심은 나무만 쥐똥나무 같은 관목 포함해 느티나무 잣나무 노나무 무궁화나무 등까지 하면 대략 개수로는 200그루, 종수로는 50종은 심었을 겁니다. 그런데 재배 관점에서 먹거리 나무 곧 유실수와 새순 먹는 특용수를 심은 건 2019년부터이니 잘해야 5~6년 되었지요. 나무는 대표적인 다년생인데다 방치해도 죽지 않으니 게으름을 피우기 딱 좋아 그렇게 세월이 지났어도 공부를 하진 않아 여전히 초보나 다름없는 거지요.
나무 이야기를 쓰기가 영 자신이 없었던 이유입니다. 쓸까말까를 몇 번 망설인 끝에 쓰기로 마음 먹은 것은 어차피 제 글은 전문적인 글이기보다는 체험담에 가까운 얘기라 좀 어설프더라도 독자님들이 이해해주시리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덧붙여 제 글쓰기 버릇 중에 하나는 공부한 걸 쓰는 게 아니라 쓰면서 공부하는 스타일이어서 이번 참에 공부를 좀 더 하자는 욕심도 작용했지요. 또 이번 글은 흙 이야기라는 틀 속에서 하는 거라 본격적인 나무 얘기는 아니니 부담도 덜 하긴 했습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그 전에 심었던 나무들은 거의가 조경수라 사실 손 볼 것도 없었던 반면에 새로 심은 유실수와 특용수는 수확을 목적으로 하기에 손 볼 게 적지 않았습니다. 거름 주기는 일반 작물과 별 차이가 없어 어려울 게 없지만 전지(가지치기)는 5~6년이 지난 지금도 헷갈리기만 합니다. 다만 이 전지 작업을 하다 보니 일반 작물 재배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습디다. 바로 전지 작업은 하늘을 보고 일한다는 점입니다. 일반 작물은 쭈그려 앉든, 허리 굽혀 하든, 땅을 보고 하는 일들이죠. 그 때는 몰랐어요. 근데 전지는 하늘을 보고 일을 하더란 말입니다.
일단 좋은 점은 허리가 자연스레 펴진다는 겁니다. 보통 촌로 농부님들은 대부분 허리가 꼬부랑이잖아요. 그런데 한참을 하늘을 배경으로 전지 작업을 하다보니 느낌이 참 좋더라구요. 비로소 내가 하늘과 소통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랄까요.
초보자의 소감은 그 정도로 하고요, 어차피 이번 글에선 흙 입장에서 본 나무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나무를 심으면 흙에 좋을까요, 나쁠까요?
저희 밭 가엔 한 50살은 되어 보이는 참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북쪽 끝에 있어 남향을 하고 있으니 저희 밭엔 나무 바로 아래나 해질녁에 그늘을 드리우지만 나무 넘어 이웃 밭에는 남쪽에 큰 나무가 자리 차지하고 있으니 그늘을 드리우죠. 저희 밭을 구입하곤 경계 측량 후 경계 따라 도랑을 내기 위해 포크레인을 불러 작업하는데 그 나무 너머 밭을 빌려 농사짓는 동네 할배가 다짜고짜 포크레인으로 참나무를 죽이라는 거지 뭐에요.
어르신 밭에 그림자 드리우긴 하지만 그리 심해 보이진 않고, 저런 큰 나무는 함부로 죽이면 안된다, 지금까지 가만 계시다 왜 이제 와서 나무를 죽이라 하시나, 어쨌든 내 밭에 있는 나무이니 내가 알아서 하겠다 하고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몇 년 지나 어르신은 힘들다며 당신 밭을 내게 권리금 받고 경작권을 팔아 제가 직접 그 땅에서 농사지어봤더니 별 문제 없더라구요.
그 다음에 10년쯤 지나니 이번엔 제 밭을 둘러싸고 있는 땅들을 시에서 몽땅 임차해 산림욕장 시설 공사를 하며 또 이 참나무를 죽이려 하지 뭡니까? 경계측량을 해보니 그 나무가 내 땅 안에 있는 게 아니라면서요. 얼르기도 하고 윽박지르기도 하며 또 참나무를 지켰습니다. 별로 폼새도 나지 않는 나무를 그림자나 드리우는데 왜 저걸 보호하려 하냐며 되레 나를 가르치려 하대요.
큰 나무가 그림자 드리워 피해 주는 건 일부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25년째 이 나무 밑에서 농사지어보니 별 피해도 없어요. 오히려 나는 큰 나무가 땅 밑으로 크게 뿌리를 뻗어 우리 밭 토양을 지켜준다고 생각하지요. 토양의 물리성도 좋게 해줄 뿐만 아니라 뿌리에 많은 미생물들이 살며 더불어 우리 토양 속 생물다양성을 풍부히 해줄 것입니다. 지상에선 선풍기 역할도 해 줍니다. 큰 나무의 왕성한 증발산 작용으로 주변 기후를 건강하게 청소해주는 것이죠.
옛날엔 논 가에 버드나무와 미류나무가 있었습니다. 시골의 정겨운 경관이었지만 논을 바둑판처럼 개간하며 다 없애버렸죠. 분명 그림자 탓을 했을 겁니다. 그리고 우리 농촌 경관은 황량해졌어요. 그 정도의 그림자가 작물 재배에 큰 영향을 주기는 만무한 일이죠. 사실 오랜 세월 나무 밑에서 재배해 온 토종 벼들은 적응해왔는데 통일벼 이후 다수확 종자로 육종된 개량 벼들은 조금의 그림자에도 영향을 받았다곤 합니다.
흙을 지키는 나무
무엇을 심을 때는 꼭 유념할 게 있습니다. 심기 전 그게 내 땅과 맞는지를 반드시 파악해야 하는 겁니다. 나무가 특히 그렇습니다. 나무는 한번 심으면 최소 몇 십년 살기 때문에 한번 심으면 빼도박도 못하기 때문이거든요. 나무는 진짜 욕심낼 게 못 됩니다. 2019년 저희 밭이 산림과학원 지정 민간형 먹거리숲(산림생태텃밭)으로 선정되어 유실수와 산채나물을 많이 식재했는데요, 심고 나서 한 3년 되고 나서야 우리 밭엔 유실수가 잘 맞지 않는다는 걸 뒤늦게 알았지 뭡니까? 열매가 작은 나무들은 어느 정도 버티는 편인데 사과나 복숭아 같이 좀 큰 나무들은 고생만 하고 있습니다. 벌레는 엄청나고요, 전체적으로 생육 상태가 좋지 않아요.
왜 그럴까 곰곰 생각해보니 저희 밭이 원래는 논이었던데다 객토도 하지 않았던 겁니다. 이웃들 밭 주변은 다 객토를 했으니 우리 밭만 푹 꺼진 꼴이 되고 만거죠. 물론 배수로는 정성껏 팠기 때문에 습하진 않은데, 그래도 심토는 논흙이라 습했던 모양입니다. 나무가 어릴 때는 잘 자라다가 3년 쯤 되어 뿌리를 깊게 내릴 때쯤 문제가 되기 시작한 거죠.
반면 서울의 가락시장 옥상에 텃밭 만들어주고 상자텃밭에 사과나무 3그루를 심어주었는데 생육상태가 얼마나 좋은지 저희 밭 사과나무와 비교가 안될 정도에요. 통풍도 좋고 일조량도 아주 풍부한데다, 콘크리트 바닥의 복사열까지 가세해 광합성 에너지를 확실하게 공급해 준 때문인지 열매도 실하고 벌레도 거의 없었죠. 맛도 기가 막혔어요.
사과뿐만이 아니에요. 저희 밭 온실에서 과채류 작물 모종을 키워 심어주면 저희 밭보다 훨씬 잘 자라대요. 토마토 가지 고추들이 얼마나 맛이 좋은지 놀랐어요. 옥상텃밭은 여름에 복사열로 작물들이 마르는 걸 조심만 하면 진짜 끝내줍니다. 유실수든 과채류든 열매 맺는 식물들은 습기는 좋아하지 않으면서 통풍, 일조량, 높은 기온을 절대적으로 좋아해서 그럴 겁니다.
아무튼 그래서 나무는 심을 곳의 토양 상태와 기후 조건을 잘 살펴 심어야 합니다. 1년생 작물이야 실패해도 1년만 고생하면 되지만 나무는 다년생이라 ‘실패하면 다시 심지...’가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다년생이라 해도 풀하고는 달라요. 풀이야 수틀리면 옮겨 심어도 되지만 나무는 옮겨 심는 게 만만치 않잖아요? 그래서 나무 심을 때는 나무 공부도 필요하지만 그에 맞는 흙 공부를 강력히 권합니다.
아무튼 먹거리 나무를 심은 지 5년이 넘었어요. 적응할 놈 적응하고 아직도 고생하는 놈도 있고 개 중 잘되는 놈도 있어요. 밤나무는 그 중 참 잘됩니다. 머루나무도 잘 되고요, 다래, 포도, 매실, 두릅, 개두릅(엄나무), 화살나무(홑잎), 구기자 나무도 그럭저럭 되는 편이지요.
나무를 심어놓으니 몇 가지 재밌는 변화가 생겼습니다. 우선 한여름 폭염이 덜하죠. 제가 볼 때는 쉬원할만큼 그늘이 많이 드리운 건 아니에요. 그렇다면 나무 그늘로 피해보는 작물들이 많을텐데 거의 피해보는 일은 없어요. 그보다는 나무들의 증발산 작용으로 밭 전체적으로 기온이 떨어진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적당히 솔솔 바람도 불고요. 제가 위탁받아 관리해 주는 밭과 비교해 보면 차이가 확 드러나죠. 우리 밭만큼 나무가 심어져 있지 않아 진짜 뙤약볕이 보통이 아닙니다.
폭염이 흙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장난이 아닙니다. 이 삼일 전 비가 적당히 왔는데도 일주일은 넘게 비가 오지 않은 것 같죠. 뜨거운 뙤약볕이 흙에 내리쬐며 흙을 바싹 말려버린 겁니다. 흙이 마르면 흙 속 물만 사라지는 게 아니라 공기도 사라집니다. 표토의 물이 마르면 모세관현상에 따라 심토의 염류가 표토로 빨아올려집니다. 공기도 사라지니 토양 내 호기성 미생물이 사라지고 흙이 딱딱해집니다. 그러면 작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죠. 병에도 잘 걸립니다. 그런데 나무가 적당히 심어져 있으면 폭염으로 인한 고온도 완화해주지만 뿌리로 땅 속도 보호해주는 거지요.
게다가 나무를 적당히 심으면 폭염도 폭염이지만 여름철 폭우로부터 흙을 보호해 줄 수 있습니다. 폭우로 인한 타격을 완충해 줄 수도 있겠지만 땅 속에서 뿌리로 흙을 보호하는 효과가 더 의미있을 거라 봅니다.
나무가 아니라도 폭염으로 인한 토양 피해를 예방하는 방법으로 멀칭(mulching, 덮개)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선 다음의 무경운 글에서 다루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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